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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서] 무장 독립운동 맥 이운 ‘대전자령전투’를 기억하라

입력 : 2013-12-27 20:37:49 수정 : 2013-12-29 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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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등 공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15000원
한국 독립운동과 대전자령전투/이준식 등 공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15000원

만주의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전자령전투’는 독자들에게 생소하다. 지난 6월 30일은 대전자령전투 80주년이 되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만주, 즉 북간도, 서간도 지역에서 우리 독립군이 피어린 전투를 벌여 일본군 정규군을 거의 궤멸시킨 사건이 대전자령(大甸子嶺, 일명 태평령) 전투이다. 총사령 이청천이 이끄는 500여명의 한국독립군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1933년 이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은 험준한 계곡으로 이어진 대전자령에 매복했다. 대전자령은 지금의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汪淸)현 일대. 이 고개는 해발 800여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계곡길이 꾸불꾸불 5㎞ 정도 이어진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고갯길 양 도로변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연의 매복 장소였다. 이청천을 중심한 한국독립군은 길림구국군(길림자위대)이란 이름의 중국 항일의용군 2000여명과 함께 연변에서 철수하는 1300여명의 일본군 정규군(간도파견군)을 매복 공격했다. 관동군은 철수하는 터라 군수물자를 잔뜩 싣고 퇴각하는 도중이었다. 일본 육사에서 공부했던 이청천의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독립군과 중국군 연합부대는 군수물자를 거의 빼앗고 일본군을 거의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이 전투는 한국독립군 역사에서 봉오동, 청산리전투와 함께 만주 지역 독립군의 3대 대첩이라고 평가받는 대단한 전과였다.

이 책은 대전자령전투의 의미를 재정립해 무장 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학술서이다. 학술서이지만 만주 지역의 무장 독립운동을 실감나게 묘사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이 책에서 이준식 연세대 교수는 한국독립군의 대전자령전투는 봉오동, 청산리 전투와 함께 독립군 3대 대첩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한다. 대전자령전투에 참여한 주요 간부들은 10여년 후에 있은 일제 패망과 함께 광복군의 뿌리가 된다. 이 전투 이후 일본 관동군이 증강되고, 국내 군자금 공급 루트가 차단되면서 무장 독립운동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무장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가는 쾌거를 이룩했다. 훗날 이청천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되고 황학수, 오광선, 조경한, 고운기 등 간부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주요 리더로 크게 공헌했다. 대전자령전투는 무장 독립군의 이념과 정통성을 임시정부 계열로 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대전자령전투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주에서 피땀 서린 무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만시지탄이나마 지난 10월 22일에 한국독립유공자협회가 ‘한국독립군 중국동북지역 대첩기념식’을 거행하고, 11월 21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대전자령전투’ 국제회의를 열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 동향과 내셔널리즘의 고양, 역사인식의 퇴행이 도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시의적절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불법 식민지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투쟁하였으며, 중국 항일의용군과 함께 힘을 합쳐 대한독립을 이룩했음을 실증하고도 남는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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