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부담 큰 창의적 연구 지원을 국내에서는 많은 조명을 받고 있지 않지만 1894년의 청일전쟁은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수천년에 걸쳐 동양의 종주권을 행사해 온 청나라에 맞서 변방의 소국인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청나라의 해군과 육군을 섬멸하고 요동반도를 점령해 대승을 거둠으로써 세계 정치·경제의 주도권 판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던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역사는 청일전쟁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일본과 그 판도를 바꾸려고 하는 중국의 갈등으로 점철됐다.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선포와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로 대표되는 영토분쟁은 이러한 갈등의 연속선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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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
세계적으로 19세기 말까지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뿐이다. 당시 러시아는 본격적인 산업국가 진입에는 실패한 상태라 일본의 산업혁명 성공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를 보면 개항과 개혁에 실패한 이유로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이후 집권한 민씨 정권의 부패를 주요 이유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전쟁 연구 전문가인 미국 해군대학의 세라 페인 교수는 그의 저서 ‘청일전쟁’에서 “청일전쟁은 근본적으로 산업혁명을 수용한 일본과 달리 이를 거부한 청나라와 조선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으며, 산업혁명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두 나라를 지배했던 과거지향적인 유교라는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에 기인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 현주소를 살펴보면 선진국에서 검증되고 정착된 분야에 한해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지 모른다. 절대적인 연구비 규모로 보면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대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경제논리에 밀려 유행하는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다 보니 위험 부담이 큰 창의적 연구는 연구비 수혜가 극히 어렵다. 특히 노벨상 수상의 계기가 되는 논문의 발표 대상자는 주로 30대에 집중되는데 막상 우리나라는 이 연령대의 연구자 연구비 수혜비율이 가장 낮다. 연 5000만원 이하의 기초연구비를 3년 이내로 지원하는 연구재단의 일반 연구 지원율이 10대 1을 초과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대학에서 채용할 신진 연구자를 국가가 결정해 5년간 연구비를 지원한 후 그 성과를 보고 대학이 정년직 채용을 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창조와 발전은 무한한 상상력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 즉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지원을 통해서만 그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비록 새로운 시도가 상상에 그치거나 실패하든 간에 이런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며,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나라가 주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양 속담에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19세기 말 조선이 겪은 비극의 재현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과학기술 혁명을 예의 주시하고 적극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양자전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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