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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지음/김난주 옮김/한길사/1만6000원 |
일본 여성 작가 시오노 나나미(75)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로마사의 해박한 지식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40여 년간을 오로지 로마사 연구에 쏟았으니 그간 쌓아놓은 관련 콘텐츠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곤 하지만, 시오노가 쓴 대작 ‘로마인 이야기’가 더 읽힌다. 그녀의 글은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딱딱한 아카데믹한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현대 서구 문명의 기초라는 점에서 동서고금의 역사가들은 관련 저작물을 수없이 쏟아냈지만, 시오노만큼 인기를 끌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 낸 신간 ‘생각의 궤적’도 그 연장선이다. 1975년부터 2012년까지 37년간 다양한 미디어에 올린 그녀의 글들을 엄선해 엮은 수필집이다. 이를 통해 기원 전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로마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조망해볼 수 있다. 시오노는 현대 시대가 로마의 말기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 내내 떠올랐던 감상인데, 20세기 말의 현대는 5세기 말의 고대 (로마)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현대 세계를 두루 지배하고 있는 서구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경제·사회·군사적인 위기가 정신의 위기와 맞물리지 않는 한 극복이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정신의 위기”라고 풀이한다. 정신의 위기에 대해 시오노는 “마음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기피하는 사회의 출현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그녀는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기 위해 과연 누가 고생을 자처할 것인
가”라고 반문하면서, “정신의 위기란 이전에 인정되었던 가치가 더는 인정되지 않는 시대에 생겨나는 체념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로마 멸망의 이유를 풀이해 본 것 같다.
시오노의 일본 사랑에 대한 글귀도 눈에 띈다. “흔히 로마 문명이 그리스 문명의 모방이라곤 하지만 로마는 군대, 법, 기독교로 세 번이나 세계를 지배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서구 문명을 모방했다는 지적에 주눅이 들곤 하지만,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을 이뤘다는 점을 시사한다. 1968년 첫 작품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낸 이후 40여 년간 열정적인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 15년에 걸쳐 완간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역사 실화를 쉼없이 써왔다. 시오노는 20대엔 젊은 여자의 몸으로 ‘선원’이 되어 지중해 곳곳을 누볐다. “지중해 따스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고,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쉬면서 경험한 이 지중해 순례는 나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고 삶의 궤적이 되었다.” 그녀는 “내가 죽으면 이 지중해 어딘가에 재를 뿌려달라”는 유언도 미리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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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좀체 견해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거닐 때의 시오노 나나미. |
시오노가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은 20대였다. 1년 여정으로 출발해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10월의 로마였다. “로마의 가을은 나를 역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매혹적인 도시라고 칭찬했다. 그 1년짜리 여행이 40년이 넘었다고 회상한다. “로마는 2000년 동안 변화한 일곱 가지 얼굴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묘하게 중첩되어 살아 있다. 이만큼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도시를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녀의 저술 활동과 삶의 속살, 그리고 역사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다. 30대 젊은 작가의 생기발랄한 글솜씨부터 70대 노작가의 성숙한 시선까지 고루 접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 올린 시오노의 칼럼들을 유심히 살폈으나 그녀는 좀체 일본 역사에 대한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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