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자녀들 육성 증언 통해 고인의 인간적인 가정사 공개
“직원들에 호랑이였던 아버지, 우리와 장난치는 걸 좋아하셔
항상 ‘네 엄마는 미인’ 너스레”
“아버지는 틈만 나면 자식들에게 말하곤 했어요. ‘네 엄마 참 곱지. 미인이야, 미인.’ 아버지는 일도 많이 하셨지만 가정적인 면으로 보면 한 여성에게서 완벽한 헌신과 사랑을 받고 간 복 많은 남자였어요. 우리 엄마는 평생 동안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은 부부는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큰딸 진아(56)씨의 회고다. 포항제철(현 포스코) 직원들에겐 호랑이처럼 무서운 상사였지만, 부인과 자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고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2011년 12월13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 명예회장의 2주기를 앞두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평전이 나온다. 소설가 신중선씨가 쓰고 도서출판 문이당이 펴내는 ‘철강왕 박태준’(가제)이 그것이다. 진아씨와 부인 장옥자(83)씨의 육성 증언을 통해 그간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인의 인간적 모습을 소개한다. 박 명예회장의 가정사를 이렇게 상세하게 공개하긴 처음이다. 최근 포스코 측 인사들과 접촉, 최종 교열 단계의 원고를 입수해 살펴봤다.
박 명예회장은 1954년 장씨와 결혼해 진아씨 등 1남4녀를 낳았다. 진아씨에게 박 명예회장은 ‘더 없이 따스한 아버지’ 그 자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포철 직원들은 아버지 앞에서 벌벌 떨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우리와 장난치는 걸 좋아하셨죠. 아무리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우리가 하면 열심히 들어 주려고 애쓰던 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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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가운데)이 1970년대 초 경북 포항의 제철소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일하라”고 근로자들을 독려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멀리서 흠모하는 멋진 남자’ 같은 존재였죠.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 우리는 ‘학예회’를 열고, 엄마는 음식을 한상 가득 내놓았어요. 아버지는 술이 얼큰해져서 기분이 좋아지면 저와 동생한테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구나’라고 하셨죠. 신청곡은 항상 트로트였어요. 우리 자매가 연주하면 아버지는 미소를 띠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노래를 불렀어요.”
맏이인 진아씨는 박 명예회장에 대한 추억이 동생들보다 많은 편이다. 진아씨는 “엄마와 함께 포항에 종종 내려가곤 했는데,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어찌나 짧은지 날이 후딱 저물곤 했다”며 “엄마와 내가 떠날 때면 아버지는 숙소 계단 위에서 우리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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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오른쪽)이 1970년대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제철소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눈빛이 강렬하고 개성이 강해 보였어요. 군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반듯한 분위기였지요. ‘육사에는 생도가 몇 명이나 되나요.’ 제가 먼저 말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대답이 걸작이었어요. ‘그건 군사기밀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뭐라 말할 수가 없더군요.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안 돼 편지가 왔어요. 은근한 사랑의 고백이 담긴 호의적인 편지였습니다. (남편이) 태어나 처음 써본 연애편지이자 청혼편지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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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13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부인 장옥자씨(가운데) 등 유족이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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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2일 경북 포항 포스텍(포항공대) 구내에 세워진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동상. 박 명예회장은 그로부터 11일 뒤 타계해 이 동상을 직접 보지 못했다. |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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