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경험 대부분 알바 수준… 인사담당자 “되레 신뢰 잃어” 대기업 인사담당자인 유모(28)씨는 올해 초 신입사원 공개채용 서류심사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지원자중 한 명이 잡지를 프린팅해 티셔츠로 만드는 사업으로 성공했었다며 장황한 스토리를 풀어놓은 것. 하지만 확인 결과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홈페이지는 폐쇄된지 오래였다. 유씨는 “지원자들이 내세우는 창업 경험은 실패했거나 작은 경험을 부풀린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친구 사업을 도왔거나 살짝 발만 담근 수준인데도 상당한 창업 경험을 가진 것처럼 포장한다”고 지적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창업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일부 대학생들이 창업을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지원 등을 바탕으로 청년기업가 꿈을 키워가는 순수 ‘창업 준비생’과 달리 이들은 창업을 학점, 외국어 능력, 해외유학 경험 등에 이은 또 하나의 스펙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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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취업 카페에 오른 스펙 관련 글에 창업 경력이 빼곡히 적혀 있는 모습(오른쪽). 취업 상담게시판에 오른 글에서 서류심사 통과를 위한 요소로 창업 경험을 꼽은 모습(왼쪽). |
게시글의 상당 수는 ▲고등학교 졸업식 때 꽃다발 장사를 했다가 망한 경험▲화이트데이 때 인사동에서 사탕장사를 한 경험▲중·고등학생 보습학원 운영 경험 등 부업이나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것들이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중인 A씨는 학교 게시판에 ‘스펙을 올리기 위해 사업자 등록을 했다’는 고백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국학생창업네트워크 이대경(22) 부회장은 “학생창업네트워크와 연계된 전국 대학 내 창업동아리만 100개에 달한다”며 “이 중에는 스펙과 상금을 노리고 뛰어드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광고회사에 재직 중인 이모(26·여)씨는 “수많은 창업 동아리가 많은 아이템을 쏟아내지만 진지하게 창업을 통해 리더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면서 “경진대회를 주최한 기업 입사에 관심이 있거나 이력서에 한 줄 쓰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유명 사립대 연합 창업동아리 팀장인 이모(23·여)씨는 “경진대회에서 받는 상금은 창업자금이 아니라 동아리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창업 스펙’이 취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오규덕 컨설턴트는 “기업들이 스펙 대신 스토리를 강조하니까 취업 준비생들이 스토리마저 스펙으로 생각하고 창업이나 창업경진대회에 뛰어든다”면서 “하지만 진정성 있는 경험이었는지는 면접 과정에서 들통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정부가 이 같은 ‘가짜 창업’을 걸러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1년 788억원이던 청년창업 지원 예산이 올해에는 1271억원으로 늘었다. 창업에 따른 학업 단절을 막기 위한 창업 대체학점 인정제, 창업휴학제 등 제도적 지원대책도 최근 발표됐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경영학)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숨통을 조이는 기업 풍토를 개선하고 창업을 통해 생겨난 벤처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청년창업이 중요하지만 단순한 창업 수치나 예산 규모 등에 치우친 보여주기식 정책보다는 실질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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