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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의 뮤직칼럼] 낯선 바람 부는 이소라의 음악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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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23 10:33:42 수정 : 2013-10-30 16: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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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소라에게는 항상 ‘낯선 바람’이 느껴진다. 솔로 데뷔 전 몸담았던 혼성재즈그룹 ‘낯선 사람들’이란 타이틀에서부터 그녀에겐 이미 낯선 바람이 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럿이 함께 해도 혼자인 듯 보이고, 사랑을 해도 외로워 보인다. 여자에게는 다소 가혹한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아티스트에게는 늘 이런 외로움이 감춰져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숏커트 스타일, 미간을 찡그리며 강하게 어필하는 특유의 발성, 그리고 조금은 넉넉한 체형. 노래실력 만큼이나 ‘비주얼’을 중시하는 가요계에서 그녀는 외모보다는 당당한 매력과 솔직한 입담으로 대중에 다가갔다. 솔로 데뷔 후 ‘난 행복해’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을 때, 그녀의 인기가 잠시 스치는 바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직감했다.

KBS ‘이소라의 프러포즈’(1996~2002) MC로 활약했을 당시 이소라는 풍만한 체격에 타이트한 블랙 원피스를 주로 입고 나와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완성했다. 특유의 느리고 어눌한 말투와 수줍은 미소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말문을 열게 했고, 대중의 신뢰를 얻게 했다. 그 높은 의자 위에 다소곳이 앉아 음악 하는 사람들과 관객을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 그녀. 오래도록 그 영상은 잊기 힘들 것 같다.

이소라의 독특한 창법과 목소리를 유독 탐냈던 뮤지션이 있었다. 그가 바로 가수 겸 작곡가 김현철이다. 그는 자신이 음악 프로듀싱을 맡게 된 영화 ‘그대안의 블루’ 속 OST를 함께 부르자고 이소라에게 제안했다. 당시 노래 ‘그대안의 블루’는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대중은 사랑이야기도, 이별이야기도 아닌 애매한 가사내용 만큼이나 신비로운 이소라 목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소라 1집(Vol. 1, 1995)과 2집(영화에서처럼, 1996) 앨범의 솔로가수와 프로듀서로서 계속 인연을 이어갔다. 1집 타이틀곡 ‘난 행복해’는 이소라의 비음 강한 센 반가성 창법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재즈와 팝의 편곡, 멜로디를 몽환적으로 풀어낸 그녀의 음악은 대중성까지 고려한 김현철의 감각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이소라 3집(슬픔과 분노에 관한, 1998)은 김현철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앨범이었다. 마치 집나간 고양이가 얌체처럼 매력을 발산하려는 듯 강렬했다. 이소라는 음반을 A, B로 나눠 슬픔과 분노를 차례대로 표현했다. 이별한 후 겪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체념 혹은 성숙되어 가는 과정이 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겼다. 한 마디로 ‘완벽한 이별 정리 음반’이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사랑은 애를 먹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임의 룰도 모른 채 게임에 중독된 것처럼. 마냥 주저앉아 실연을 끊임없이 노래하는 그녀의 음반들은 지독하리만큼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이 그녀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나보다. “달콤한 유혹이 밀려올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달려간다”고 말하는 그녀의 쓸쓸함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옛사랑을 곱씹는 일 아니면 또 다른 사랑에 버거워하는 슬픈 소녀의 모습.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각오보다 더 한 외면이 그녀를 더 힘들게 했을지 모르지만 매번 음악으로 운명을 위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중은 변해버린 이소라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두려워했다. 김태원이 곡을 쓴 3집 ‘Curse(저주)’에는 “사랑할 때마다 일할 때마다 저 파멸로 향한 길이 네 앞을 밝히기를, 우울한 마음과 늘 불안함과 또 포기와 파멸들이 네 앞이기를 바래”라는 가사가 나온다. 조규만의 ‘피해의식’은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자극적인 록 발성에 충격마저 자아냈다. 늘 가성으로만 불러 진성으로는 노래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완전히 깨버린 발성이기도 했다. 대중이 외면했을지 몰라도 이소라의 진정한 팬과 마니아층이 생긴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김현철과는 다시 4집(꽃, 2000)으로 만났다. 4집 타이틀곡 ‘제발’은 이소라의 건재를 알린 곡이었다. 그런데 3집 매력에 푹 빠져 있던 이소라 마니아들은 4집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소라만의 색깔이 나오다 말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소라는 다시 용기를 냈고, 스스로 프로듀서로 나서 5집(SoRa's 5 Diary, 2002)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직접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 줄 수 있는 홍대의 인디 작곡가들을 찾아 나섰다. 이때 인연이 된 작곡가들은 6집(눈썹달, 2004), 7집(이소라, 2008)까지 함께했다.

이소라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앨범을 낸다고 말한 적 있다. 이별 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아 음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야기가 통용된 건 5집까지가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는 지난 사랑의 아픔을 되씹는 정도의 재창조되는 가사들이 눈에 띈다. 마음이 성숙해질수록 가사는 시(詩)처럼 간결해지나 보다.

그녀의 삶이 어두워질 때마다 음악은 더 깊어졌다. 핏기 없어 보이는 화장, 마치 시네이드 오코너 같은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채 MBC ‘나는 가수다’(2011)에서 부른 ‘바람이 분다’는 전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팠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 열고 소리 내어 부르고 싶었던 노래. 누구나 그녀처럼 고통스러운 이별과 외로움, 사랑의 아픔에 허덕였던 적이 있었을 거다. ‘바람의 분다’ 중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가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가수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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