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야당에 유리한 일을…"
조 지검장이 尹 나무라 국가정보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이 국정원 직원을 긴급체포한 뒤 갑자기 업무에서 배제돼 논란을 낳았던 4일간의 전말이 드러났다.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 입을 통해서다.
윤 지청장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국정원 직원 체포 수사의 필요성을 보고했고, 공소장 변경 승낙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조 지검장이 자신의 체포 보고에 격분했고, 수사 중단을 지시했다는 ‘돌직구’를 던졌다. 이날 윤 지청장은 작심하고 국감에 임한 듯 ‘검은 넥타이’를 매고 왔고, 조 지검장은 윤 지청장의 ‘항명’에 간혹 눈물을 내비쳤다.

윤 지청장과 조 지검장 증언을 종합하면 파문의 발단은 지난 15일 늦은 밤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그는 조 지검장 집을 심야 방문했다. 무작정 간 게 아니라 모종의 계획이 있어 찾았다.
윤 지청장이 들고 간 건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이 만든 A4용지 2장짜리 수사보고서였다. 여기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에서 5만5689회에 걸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을 게시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 지청장이 국정원 직원 체포 얘기를 꺼낸 건 조 지검장 집을 나설 무렵이었다. 당시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은 간단한 다과와 맥주를 주고받은 상태였고,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 지청장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 지검장에게 수사 보고서를 구두로 알린 뒤 국정원 직원 긴급체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조 지검장은 즉답하지 않고 윤 지청장을 질책했다. 윤 지청장 증언에 따르면 조 지검장은 이 자리에서 격분한 상태로 “왜 야당에 유리한 일을 하려 하느냐. 내가 사표를 내고 관두면 그때 체포하라”며 자신을 나무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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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서울고검장(앞줄 가운데),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검찰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조 지검장 집을 나온 윤 지청장이 행동에 나선 건 다음날인 16일이었다. 그는 조 지검장이 국정원 직원 긴급체포를 승낙하지 않은 걸로 봤고, 이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해당한다고 간주해 수사 책임자인 본인 전결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결과는 당일 저녁 나왔고, 수사팀은 영장 발부 다음날인 17일 국정원 직원 3명을 긴급체포했다.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을 체포한 뒤 검찰은 발칵 뒤집어졌다. ‘화살’은 곧장 윤 지청장에게 돌아왔다. 윗선에서 윤 지청장에게 “국정원 직원을 돌려보내라. 압수물도 (국정원에) 돌려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윤 지청장은 일단 지시에 응했다. 하지만 체포한 직원들을 돌려보내는 대신 조 지검장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에서도 정치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원 전 국정원장이 개입한 정황이 있는 만큼 이미 재판 중인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테니 승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윤 지청장에 따르면 조 지검장은 자신의 이런 요구에 총 4차례 승인해줬다고 한다. 이후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에게서 공소장 변경 신청 승인을 받았다고 보고 18일 법원에 이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윤 지청장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갑자기 ‘윤 지청장을 특별수사팀 직무에서 배제하라’는 조 지검장 명령이 내려온 것. 윤 지청장은 저녁 식사 중 전화로 직무 배제 명령을 받았고 상황은 그렇게 종결됐다.
조 지검장은 윤 지청장 주장에 대해 “15일 저녁 만남에서 격분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윤 지청장은 구두로 보고했다고 하지만) 절차에 흠결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윤 지청장이 ‘수사 외압’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신을 압박하자 “이렇게 항명이라는 모습으로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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