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빚은 조각 작품, 언스대협곡
후베이(湖北)성 서남부 내륙지방인 언스(恩施)시는 한국 관광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지역이다. 언스투자먀오족자치주의 행정구역인 언스는 평균 해발고도 1000m로, 총 면적의 70%가 산으로 이뤄져 있다. 인구는 80만여 명으로 한족 이외에도 투자(土家)족과 먀오(苗)족 등 소수민족이 54%를 차지하고 있다. 인근 이창(宜昌) 지역 관광지인 싼샤런자(三峽人家)에 가면 투자족들의 전통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언스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30분가량 달리면 언스대협곡에 도착한다. 중국인이 최고 명산으로 꼽는 곳은 황산, 한국인이 중국 최고 명산으로 꼽는 곳은 장자제(張家界)인데, 언스대협곡은 이 두 곳을 합친 듯한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황산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 장자제가 석영사암 봉우리로 유명하다면 언스대협곡은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의 석회암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최고 해발고도 2200m로 전체 길이는 108㎞, 총면적은 300㎢나 된다. 이 중 관광지로 개발된 구간은 10㎞. 지상으로 솟구친 기암절벽 속에서 트레킹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협곡을 일주하는 코스는 4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 웅장한 규모와 까마득한 수직의 낭떠러지가 보여주는 위용에 감탄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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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대협곡 해발 1700m 절벽에 설치된 잔도. 깎아지른 절벽길이 500m 정도 이어진다. |
일선천을 통과하면 언스대협곡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바로 절벽 위를 걷는 잔도(棧道·사다리길)의 시작이다. 해발 1700여m의 벼랑에 철심을 박아 만든 폭 2m도 안 될 법한 잔도가 500m 정도 이어진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문득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만들다가 목숨을 잃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잔도를 걸으며 보는 운무의 바다는 신비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도 안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 솜사탕 같은 뿌연 장막 뒤에서 절묘한 바위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잠시 부드러운 구름의 바다 위에 고고하게 떠 있는다. 구름이 움직이면 이 몽환적인 풍경도 다시 모습을 감춘다.
잔도를 지나면 언스대협곡의 또 다른 보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낸다. 촛대를 닮은 높이 150m의 바위기둥 ‘일주향’, 아이를 업은 엄마바위 ‘모자정심’, 코끼리 코를 닮은 ‘코끼리 바위’ 등등…. 머리 위 기암괴석들 사이로 무협영화에 나오는 무술 고수나 신선들이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다.
트레킹 코스는 총 6000여개의 계단이 이어지는데 험준한 구간 곳곳에는 관광객을 태우고 오르는 가마꾼들이 있다. 노약자나 다리가 불편한 관광객들은 이용해볼 만하다. 하산 길 마지막에는 작년 말 완공된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400m 정도를 운영하는데 아시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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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대협곡을 감싸고 있는 운무의 바다. |
칭장강(淸江)은 언스에서 서쪽으로 70여㎞ 떨어진 리촨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총 길이가 420여㎞에 달하며 마지막에 창장강(長江·양쯔강)으로 합류한다. 투자 사람들은 이 칭장강을 ‘어머니 강’이라 부른다.
언스에서 가까운 펀수이허 부두에서 유람선을 타면 칭장강을 따라 좌우 병풍처럼 이어진 협곡 사이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짙푸른 칭장강을 가르는 유람선에서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양쪽으로 아찔한 벼랑과 기묘한 석회암 봉우리들이 다가오면 할 말을 잃게 된다. 4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인데 시시각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이 마치 갤러리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하다.
칭장화랑의 자랑거리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폭포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100여개에 달하는 폭포들이 곳곳에서 장쾌한 물줄기를 강으로 쏟아낸다. 수많은 폭포 중에서도 백미는 ‘나비 폭포’. 나비 모양을 한 수십m의 거대한 암벽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줄기에 선상 관광객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눈과 귀가 시원해지고 가슴 속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짝퉁 천국’ 중국에서도 산수(山水)만큼은 진짜배기란 말이 있다. 산과 폭포와 강이 만들어낸 칭장화랑의 기막힌 조합은 진짜배기임에 틀림없다.
언스=글·사진 이지혁 기자 pressc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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