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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獨 슈투트가르트 중앙도서관 설계한 재독 건축가 이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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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27 21:04:25 수정 : 2013-09-27 22: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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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남부 슈투트가르트 시내 한복판에는 벽에 한글로 ‘도서관’이라고 쓰인 중앙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을 설계한 사람은 재독 한인 건축가 이은영(57·사진) 교수다. 유럽 도시의 심장부에 우뚝 선 이 도서관 외벽에 한국어가 영어, 독일어, 아랍어와 함께 동서남북 각 문화권을 대표하는 언어로서 나란히 들어가도록 한 것은 그의 의지였다.

이 도서관은 동서양의 미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7대 도서관’(CNN방송), ‘독일 올해의 도서관’(독일도서관협회) 등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의 공공건축물을 직접 설계한 첫 한국인인 이 교수를 최근 만나 그의 건축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독일 쾰른에 있는 이 아키텍츠(Yi Architects) 대표이자 한국의 교수로서 양국을 오가며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무명 건축가였던 그는 1999년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전 유럽 현상공모에서 234개 작품 중 1등으로 당선되며 유럽 건축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2등을 한 원로건축가 고트프리트 뵘 등 쟁쟁한 건축가들을 제치고 당선된 젊은 동양인 건축가에게 미심쩍은 눈빛이 쏟아졌다. 당시 그는 프로젝트 관계자들 앞에서 시대를 앞서간 건축물과 도시계획으로 현대의 ‘건축실험실’이라고도 불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도서관이 갖는 의미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현대적 거주공간을 제시한 ‘바이센호프 주거단지(Weissenhofsiedlung)’와 기념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 ‘슈투트가르트 시립미술관(Staatsgalarie Stuttgart)’에 이어 내 작품이 100여년 전부터 이어져온 모더니즘의 완결이라고 강조했다”며 “연설이 끝난 후 우호적으로 흐름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 도시개발사업인 ‘슈투트가르트21’의 핵심적 건물로 건축비가 7900만유로(약 1148억원)에 달하는 도서관의 설계는 결국 이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한 도시의 구심점에 도서관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라며 “과거에는 도시의 구심점을 종교나 정치적 건물이 담당했지만 이제 인간의 정신적인 구심 역할을 도서관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슈투트가르트시 측은 동양의 건축가를 예우했다. 건물 벽에 동양을 대표하는 언어로 중국어나 일본어를 넣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결국 한국어가 들어갔다. 시장은 건물 기공식 때 중요한 자료를 타임캡슐처럼 땅에 묻는 전통에 따라 건축 도면, 연설문 등의 자료와 함께 한국의 100원짜리 동전을 함께 땅에 묻기도 했다.

건물은 정육면체 형태로 안과 밖 모두 흰색의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다. 그는 유럽 건축사에서 중요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재해석해 유럽적 건축 전통을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 독일을 비롯한 서방의 언론과 건축 평론가들은 건물에 도, 선불교, 풍수지리 등이 들어있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한쪽 벽면에 한글 명조체로 ‘도서관’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쪽 문화권을 대표하는 언어로 한글이 들어갔으며 다른 쪽 벽면에는 각각 영어(서쪽), 독일어(북쪽), 아랍어(남쪽)로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이은영 교수 제공
이 교수는 “서구의 문화적 배경을 존중한 작업의 결과물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들어 있는 동양적 가치관과 체험도 녹아 있었다”며 “한국에서의 아픔을 가지고 서구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는데 결국 한국적인 것을 보편적 가치 속에 빚어넣은 격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에서의 아픔’은 일제 침략과 남북분단 등 특수한 역사적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 도시들이 자본주의 논리에만 지배되며 우발적으로 난개발된 것을 뜻한다. 그가 독일에서 건축을 시작한 이유다. 서구 역시 근대화 과정을 거쳤고 30여년 전 당시 독일은 서양 근대 건축사를 움직이는 중심에 있었다. 주변에서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홀로 유학비용을 모아 독일 아헨공대에 입학했다.

그는 “아기 분유값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막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헝그리 복서’처럼 생동감 넘치는 유학생활을 했다”며 “독일이 통일되는 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졸업작품을 끝내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공건축 공모전에 계속 도전했다. 첫 도전작인 베를린 중앙역지구 도시재개발안에 8등으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바이마르 시민회관 개축계획안, 코트부스 주정부 청사계획안 등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 입선했다. 최근에는 하노버에 있는 니더작센 주의회 의사당 설계에 1등으로 당선돼 진행 중이다.

“건축가에게는 동시대 인간집단의 정신을 물질로 구현한다는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위대한 소명이자 숙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건축물을 통해 감지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현실과 괴리돼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독일에서 일하다가 확신이 생겼습니다.”

‘건축은 인간 역사에 대한 책임’이라는 그의 생각을 새로운 세대와 나누기 위해 그는 이달부터 고려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해외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과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건축의 신세대들이 성장하고 있다”며 “언어·문화적으로 장애가 없는 요즘 세대들은 해외에서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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