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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문자강국’ 중국의 문자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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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25 20:49:33 수정 : 2013-08-25 20: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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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보시라이 재판 문자중계 그쳐
떠들썩한 예전 다른 TV 생중계와 대조
중국은 문자(文字)강국이다. 인류 문자문명사를 수천년 끌어 올린 문자들이 많이 발굴됐고 지금도 끊임없이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발굴물은 보존되고 새 역사를 창출하는 데 활용된다. 대표적인 곳이 허난(河南) 안양(安陽)시 중국문자박물관이다. 거북 등딱지(甲)나 짐승 뼈(骨) 위에 새긴 은허문자(殷墟文字) 갑골문 태생지에 들어선 이 박물관은 중국 땅 안에 존재했던 역사상 각종 문자의 의미와 가치 등을 전하는 첨병 역할을 한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2009년 개관했지만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 박물관의 상징적 건물은 자방(字坊)이다. 글자 모양의 자방 양 옆에는 금빛 구리 봉조(鳳鳥) 조각이 있다. 박물관은 이를 가리켜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세가 있어 새로운 시기 중국 문자문명의 새로운 비약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달았다.

최근 저장(浙江)성 고분 유적지에서 출토된 돌도끼 표면의 각종 부호도 머지않아 이 박물관의 한쪽을 차지할 듯하다. 중국 고고학계는 한목소리로 돌도끼에 새겨진 몇 가지 부호가 현존 중국 최고(最古)인 갑골문자보다 1400여 년 앞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갑골문이 3600년 전 것이니 이 부호는 중국 문자역사를 5000여 년 전으로 끌어올린다.

중국 식자들은 사자성어나 그 뜻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자’ 쓰기를 즐긴다. 주요 이벤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문자중계다. 중국 최대의 정치 이벤트인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때도 실시간 문자중계가 있었다. 1980년대 초 ‘문화대혁명 4인방’ 재판 이후 중국 최대 정치재판으로 불리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보시라이(薄熙來) 재판에도 문자중계가 등장했다. 과거 4인방 재판, 양회 때와 다른 점은 TV중계 없이 문자중계뿐이라는 것이다.

문자중계는 스포츠 중계 때 널리 활용된다. 각종 포털 사이트가 실시간 전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투수 류현진, 신시내티 레즈 추신수의 활약상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속에서 그래픽과 짤막한 글로 다가오는 문자중계는 때로는 TV를 대체하기도 한다. 결과에 대한 갈증을 빠르게 해소하는 데 이 보다 더 좋은 수단이 있을까.

그런데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삼진 행진을 알리는 ‘KKKKKKKK’와 ‘홈런’의 짜릿한 순간만큼은 역동적 영상이 아니면 목마름을 해소할 길이 없다. 많은 이들이 생중계나 경기 하이라이트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지난 22일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시작된 보시라이 재판 현황이 나흘 연속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문자중계로 퍼져나갔다. 재판 사진도 몇 장 공개됐다. 스포츠 용어도 아닌 난해한 법정 증언들이 중국어 문자로 중계됐다. 본래 띄어쓰기가 없어 독해도 어려운 장문의 중국어가 배달됐다. 하루 수백만명의 팔로어가 있었다고 한다. 11억명 정도인 중국 휴대전화 사용 인구, 6억명을 돌파한 인터넷 사용자들 가운데 수백만명은 소수라면 소수다. 굳이 비율을 따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관심의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웨이보를 즐긴다는 20대 중국 여성은 “보시라이 사건이 뭐죠”라고 되물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반면 40대 중국 변호사는 “웨이보 중계가 되는 데 왜 TV 생중계는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30여년 전 4인방 재판은 TV로 생중계됐다. 한국에서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으니 컬러 흑백 여부를 떠나 중국에서도 당시 TV는 최첨단 선전매체였을 것이다. 중국은 6월 두 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10호를 쏘아올렸다. 국영 중국중앙TV(CCTV)는 탑승 여성 우주인 왕야핑(王亞平)이 지상 학생들에게 무중력과 표면장력을 설명하는 초유의 우주강의를 중국 전역에 실시간 생중계했다. 첨단 매체가 즐비함에도 보시라이 재판은 문자중계뿐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에 매달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문자박물관의 봉조 조각이 상징하는 ‘중국 문자문명의 새로운 비약’은 적어도 이번 재판의 문자중계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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