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데라와키 겐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야한 영화 아냐?”
포스터를 언뜻 본 사람은 이런 반응을 내놓지만 실제로 야한 영화는 아니다. 성행위·강간과 여성 성기가 적나라하게 나오지만 영화 ‘전쟁과 한 여자’는 야하지 않다. 되레 야하기를 기대한 장면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 영화는 1976년 개봉한 영화 ‘감각의 제국’처럼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성을 그린다. 패전 이후 일본 사회의 불안함과 퇴폐를 그린 ‘무뢰파’를 대표하는 사카구치 안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성에 천착하는 남녀에서 나아가 전범국가인 일본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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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봉한 ‘전쟁과 한 여자’ 프로듀서를 맡은 데라와키 겐(왼쪽)과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데라와키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일본 영화는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어른의 관점으로 국가·역사·사회를 다루는 영화가 너무나 적어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과거 잘못을 저질렀던 일본은 특히 더 그렇죠. 역사에 대한 일본인의 둔감함을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전쟁과 한 여자’에는 강간살인을 저지르는 상이군인이 등장한다. 전쟁이 낳은 괴물로 악명을 떨친 ‘고다이라 요시오’를 재현한 인물이다. 고다이라 요시오는 여성을 강간살인하고 임신부 배에 칼을 찔러넣었던 범죄자였다. 1946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영화에서 상이군인은 “모든 걸 군대에서 배웠다. 천황 폐하의 명령으로 살인·강도·강간을 했다. 도조 히데키 장군은 A급 전범이 됐는데 어째서 천황은 전범이 아니냐”고 묻는다.
“전쟁과 강간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범죄예요. 이 영화를 보고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증거가 없다’며 발뺌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옳지 않아요. 증거는 점령군이 오기 전에 다 태워버렸기에 없어진 거죠. 종전 이후 여기저기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과 한 여자’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아라이 하루히코(66)는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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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한 여자’는 “우경화 우려가 나오는 일본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제공 |
그러나 ‘전쟁과 한 여자’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온다. “전쟁이 좋아요. 모두 불타버리면 평등해지니까”라며 전쟁을 즐기는 창녀와 시대를 외면하기 위해 성(性)에 빠져드는 지식인, 남의 불행을 즐기며 폭격을 기다리는 노인, 7명의 여자를 죽인 강간살인범 등 일그러진 인간상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A급 전범에게 속았다며 전쟁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어요. 그러나 속인 사람만 나쁜 걸까요? 저는 속은 사람도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상전의 명령에 따라 강간살인을 했다면 그에게도 죄가 있는 거지요. 전쟁을 즐기거나 시대 상황을 외면한 이에게도 책임이 있는 겁니다.”(아라이 하루히코)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군국주의 미화 논란에 휩싸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바람이 분다’는 진주만 침략에 동원된 전투기를 만든 제작자의 꿈과 희망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한 마디로 기만적이에요. 주인공이 만든 전투기가 실제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모두 알고 있는데, 결과는 무시하고 한 개인의 꿈에만 초점을 맞춘 거지요. 한국·중국뿐 아니라 유럽도 불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봅니다. 역사에 무신경한, 상당히 둔감한 영화예요. 우리는 반대로 그런 둔감함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데라와키 겐)
이현미 기자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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