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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할머니와 필리핀 소녀의 10년 편지우정 ‘잔잔한 감동’

입력 : 2013-07-22 01:32:10 수정 : 2013-07-22 01: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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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씨, 해외 아동 후원 인연
편지 통해 고민·위로 서로 나눠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정말로 좋아요. 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느낄 수 있거든요.”(클레어)

“클레어! 나는 행복해. 너와 이렇게 교제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고맙단다.”(윤 할머니)

일흔이 넘은 윤영희(71·사진) 할머니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필리핀 국적의 ‘손녀’가 있다. 지금까지 이 손녀와 주고받은 편지만 무려 80여통. 그 사이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소녀는 사춘기 소녀로 훌쩍 자라났다.

21일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 따르면 윤 할머니는 2004년 7월부터 이 단체를 통해 매달 필리핀 소녀 클레어(15)에게 양육비를 후원하고 있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나기가 어려워 ‘후원금 자동이체’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윤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빈곤과 홍수 등 각종 자연재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은 클레어에게 ‘후원금 몇 만원’ 이상의 힘이 되고 싶었다. 진심을 담은 편지는 그 마음 하나로 시작됐다. 오가는 편지는 연계 기관을 통해 ‘한국어→영어→현지어’, 그리고 그 역순으로 번역을 거쳐 전달됐다. 윤 할머니는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알면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생기는 법”이라며 웃었다.

후원에 대한 고마움과 인사만 담겼던 편지는 언젠가부터 주변 지인들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요관암 진단을 받은 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길”로 표현하며 착잡한 심정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클레어는 “몇 달 전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치료를 받으셨다. 가끔은 고난에도 부딪치지만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또래답지 않은 조언으로 할머니를 위로했다.

지난해에는 학교 성적이 좋지 못했다는 클레어의 편지에 윤 할머니는 “이 기회를 통해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볼 줄 알길 바란다”며 충고하기도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지만 속 깊은 고민을 편지로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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