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사라져서 거의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있다. 그 중에서 혼례전날 온 동네를 떠나갈 듯 외치는 “함사세요” 소리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 뿐 최근에는 듣기가 어려운 소리가 됐다. 예전에는 함 파는 소리가 동네에 들리면 어느 집 아가씨가 시집을 가는구나 하고 함께 즐거워했지만, 요즘 같아서는 동네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나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근에는 신랑이 혼자 신부 집에 함을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예전같이 함 파는 광경을 보기는 어렵다. 현대에 맞게 함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함속에 들어가는 품목들은 바뀌었지만 그 의미와 뜻을 알고 준비한다면 결혼의 의미 있는 과정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함이란 신랑 집에서 결혼이 성사돼 감사하다는 의미로 결혼식 전날 신부 집으로 혼서 및 혼수를 넣어 보내는 함을 말한다. 이러한 함은 서구식 결혼예식을 치루는 현대에도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리민족 전통 결혼식의 공식 절차 중 하나이다.
함속에는 혼서지와 음양의 결합을 뜻하는 청홍비단의 혼수, 예물을 넣는다. 요즘에는 비단대신 한복 또는 양장(예복)을 보내기도 하며 다이아몬드, 순금, 루비 등의 각종 보석 세트와 현금을 넣기도 한다.
1. 혼서지
결혼 성사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혼서지는 일부종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으며, 예전에는 죽어서 무덤에까지 함께 넣어갈 정도로 신부에겐 귀중한 것으로 여겨졌다. 혼서는 신랑 집안에서 제일 높은 남자 어른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주단집이나 한복집 등에서 인쇄된 것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혼수(채단)
여자의 음기를 상징하는 청색비단은 붉은 색 한지에 싸서 청색 명주실로 매고, 남자의 양기를 상징하는 홍색 비단은 푸른색 한지에 싸서 붉은색 명주실로 매어 청색 채단은 아래에, 홍색 채단은 위에 놓는다. 명주실은 매듭을 짓지 않고 한 번에 풀리도록 매어야하며, 한지의 위아래를 소통시켜 부부간의 막힘없는 화합을 기원한다. 예전에는 한복감으로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완성된 한복 또는 양장 등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3. 오방주머니
다섯 개의 주머니에 오곡을 넣어 오곡주머니라고도 하는데 붉은색 주머니에는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로 붉은 팥을 넣어 남쪽에 두고, 노란색 주머니에는 며느리의 부드러운 심성을 바라는 의미에서 노란 콩을 넣어 중앙에 둔다. 파란색 주머니엔 부부의 해로를 기원하고 질긴 인연을 바란다는 뜻으로 찹쌀을 넣어 동북쪽에, 분홍색엔 자손과 가문의 번창을 의미하는 목화씨를 넣어 서북쪽에 둔다. 마지막으로 녹색 주머니에는 절개와 순결을 상징하는 향나무 깍은 것을 넣어 동남쪽에 놓는다. 이때 각 주머니의 내용물의 개수를 홀수로 넣는다.
4. 포목
함을 쌀 때는 바닥에 고운 종이나 한지 등을 여러 겹 깔고 혼서를 넣고 명주, 모시, 무명을 한 필지씩 넣는데 초록색 보자기로 싼 후 비단 띠를 얹고 홍색 겹보자기로 싸서 네 귀를 맞춰 모은 다음 묶지 않고 ‘근봉’이라고 쓴 종이로 감아 매고 갈 수 있도록 무명필로 어깨끈을 만든다. 무명필은 아이가 출산하면 기저귀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혼수함을 쌀 때는 먼저 함 바닥에는 붉은색 한지를 깔고 그 위에 오방주머니를 넣은 뒤에 한지로 싼 채단을 오방주머니 위에 차곡차곡 놓는다(청채단 위에 홍채단을 놓는다). 채단 위에 신랑의 생년월일을 적은 사주를 홍보자기에 싸서 근봉을 한 후 넣고, 그 위에 다른 예물과 함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는 패물을 놓는다.
전통 함의 경우 중간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혼서지보를 놓는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은 후 함보로 곱게 싼다. 함보를 쌀 때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모아 잘 꼬아서 연꽃 모양처럼 만든다. 완성되면 함은 맬 수 있도록 무명천을 손으로 꼬아 어깨끈을 만든다. 어깨끈 역시 매듭이 없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무함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행용 가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행용 가방은 신혼여행에 필요하므로 일석이조이기도 하다. 다만 여행용 가방을 함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혼서지보를 신랑이 따로 챙겨 놓았다가 드리는 것이 좋겠다.
함 보내는 시기는 결혼식 전날 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결혼준비로 바쁜 신부 집의 상황을 고려해 일주일 전후쯤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예로부터 음양이 교차하는 시간에 함을 보낸다 했으므로 해가 진 뒤 함을 지고 가야한다.
함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고 하는데 원칙은 신랑의 친척 중 결혼해 아들을 둔 사람 중에 부부 간 금술이 좋고 성실한 사람을 골라서 함진아비로 삼는다. 하지만 요즘은 함진아비를 신랑의 친구가 하거나 신랑이 직접 매고 가기도 한다.
함진아비는 홍색의 포를 입고 얼굴에 오징어로 만든 가면을 쓰는데 (얼굴을 까맣게 칠하기도 함), 그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함을 지고 가는 길에 흉하고 나쁜 것을 보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또 함진아비는 일단 함을 지면, 도중에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신부 집에서 함을 받을 때에는 찹쌀과 통팥을 섞어 시루에 쪄서 만든 봉치떡을 시루째 준비해 상에 올려놓는다. 함이 도착하면 신부의 아버지가 함을 받아 시루 위에 먼저 얹고 함진아비와 신부 아버지가 맞절을 한다. 함진아비에게 예를 다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다.
보통은 신부 어머니 또는 신부 집의 어른이 함안에 손을 넣어 채단을 꺼내는데 이때 청색에 싼 채단이면 아들을, 홍색이면 딸을 낳는다고 전해진다. 함을 열어본 뒤 준비한 봉치떡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봉치떡은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뜯거나 접시 또는 밥주발로 잘라 신부에게 제일 먼저 먹이고 나머지는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다. 봉치떡은 복떡이라 하여 집밖으로 내지 않는다.
함을 받은 신부 집에서는 신랑과 함진아비, 친구들이 같이 함을 지고 오면 함 값을 준비해두었다가 건네준다. 함 값은 적게는 20만원부터 많게는 1백만원 정도까지 준비한다. 신부는 받은 함과 그 내용물을 잘 챙겨두었다가 시집갈 때 가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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