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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로명주소법은 전통문화 파괴”

입력 : 2013-06-04 21:15:05 수정 : 2013-06-04 21: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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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채 前 장관등 63명 헌소
“역사 ·문화 담긴 법정지명 사라지고
엘씨디로 ·웰빙길 ·스포츠로 등 사용
정책 입안 과정서 논의 없이 졸속 추진”
땅도 이름이 있다. 땅에는 사람 이름처럼 등기부에 등록된 이름, 법정지명이 있다. 과거부터 사용돼온 법정지명은 대부분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들어도 대충 어떤 곳이겠거니, 어떤 역사가 있는 곳이겠거니 추측되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공포된 새 도로명주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내년부터는 새로 정한 길이름이 법정지명으로 대체된다.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새 도로명주소법이 헌법상 대통령의 민족문화 창달 의무에 어긋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대한불교청년회 회원과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 지명연구가 박호석씨 등 63명은 3일 “오랫동안 써 온 법정지명에는 단순한 위치 표시 말고도 역사와 전통문화가 녹아 있다”며 “이를 없애는 새 도로명주소법은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헌법소원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전통문화가 배어 있는 법정지명을 포기하면서까지 택배나 우편배달의 편의성을 추구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주소 찾기가 어려워서 바꾼다는 것은 궤변”이라며 “새 도로명주소법은 헌법 제69조 대통령의 민족문화 창달 의무와 제9조 국가의 전통문화보존 의무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제10조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문화향수권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도로명주소법은 정책 입안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졸속 추진됐다”며 “일제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에도 살아남은 법정지명을 없앨 게 아니라 사라진 지명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청년회 회원 등이 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새 도로명주소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청년회 제공
특히 새 도로명주소법의 문제점으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현재의 법정지명이 새 도로명에 전혀 반영되지 않아 내년부터 사라지는 동·리의 법정지명이 전국적으로 4000∼5000곳에 이른다는 점이다. 일례로 조선왕조 초기에 행정구역명으로 지정돼 500년 넘게 유지되어온 서울 종로구 지명의 경우, 전체 72개 동명 가운데 59개(82%)가 사라지게 된다.

둘째로는 일부 지역의 새 주소로 부적절한 법정지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충남 홍성군의 토굴새우젓길, 경남 남해군의 스포츠로, 전남 진도군의 웰빙길, 서울 영등포구의 디지털로, 경기 파주시의 엘씨디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세 번째로는 다수의 길 이름이 통일로 1200번길 12처럼 특색이 없는 일련번호(숫자)로 표기되는 점을 들어 새 도로명주소법 반대 이유를 밝혔다.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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