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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쇠렌 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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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19 19:23:33 수정 : 2013-05-19 19: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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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代때 인도여행하며 목공 관심
日서 20년 체류… 최고 명인에 사사
현지서 덴마크 디자인도 가르쳐
中에 ‘매츠폼’ 세워 왕성한 활동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전시장에 전시된 의자에 그가 앉는 시범을 보인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장인 전통을 자신의 디자인으로 승화해 주목받고 있는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쇠렌 마츠(Soren Matz·50)를 그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의 비영리센터 아트클럽1563에서 마주했다. 그동안 장인들과 협업하는 아티스트들은 있어 왔지만 장인이 주도하는 아트 작업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인도 등 해외로 돌아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았다. 오로지 나무를 만지는 일에 관심이 쏠려서다. 학교를 벗어나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목공에서 디자이너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덴마크 장인들의 빈티지 작품을 재제작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가진 그는 건축가들과의 협업으로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디자인하고 있다. 공간의 아트디렉터 역할이다. 뉴욕의 세계적인 레스토랑 진조지(Jean George), 베이징의 템플호텔(Temple Hotel)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자신이 만든 의자에 맘껏 편하게 누워버린 쇠렌 마츠. 그는 “자연 그대로의 질감으로 오래 쓸 수 있는 퀄리티(질)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친환경 디자인”이라며 자신의 디자인 철학은 질과 편안함이라고 말했다.
“제가 단순히 변호사나 의사가 됐다면 한곳에 머물며 생활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나무 다루는 기술을 익혔기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초원의 동물처럼 인간도 이동하며 사는 게 본능이라 생각합니다. 덴마크는 5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이킹 후예의 나라입니다. 제 할아버지는 배를 만드는 사람이었지요. 제 유목민적 성향과 목공 재능은 아마도 그런 것에서 온 것 같습니다.”

특히 그는 일본에 20년 가까이 체류하며 동양의 전통 목공 일에도 입문한다. 일본 최고의 스키야(다실풍의 건물) 장인인 나카무라 소토지(中村外二)를 사사하고, 자신이 직접 일본 안에서 첫 덴마크 디자인을 가르치는 공방 ‘고세키’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구디자인그룹 ‘매츠폼(MATZFORM)’을 창립하여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적 문맥을 자신의 디자인에 적극 흡수하면서 글로벌한 위치를 점해 가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인 쇠렌 마츠는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인도여행을 떠난다. 그곳 사원에서 나무조각을 하는 노인과 조우하면서 운명적으로 목공 일에 끌리게 된다. 귀국 후 가구 앤티크숍에서 수리 업무를 하는 등 정규 교육과정과는 담을 쌓게 된다.

“나무 다루는 기술을 익혀서 커다란 풍차를 만들고 싶었어요. 다행스럽게 당시 앤티크숍 주인이 4년간 일하면서 나무 장인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독일의 마이스터 과정과 유사하게 4년 동안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운 거지요.”

장인 자격증을 딴 그는 덴마크를 떠나고 싶었다. 일종의 방랑벽이었다. 그는 잡지 보그에 실린 일본 교토 가쓰라(Katsura) 건축물을 보고 홀려 일본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쓰라는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이 카피해 유명해진 17세기 빌라다.

“목공 관련 일본인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50여 통 보냈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와 소통하려 하지 않았어요. 결국 저는 뉴욕으로 갔고, 소더비에서 경매 앤티크가구를 수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 세계 최고의 가구를 만지고 고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지요. 너무 좋은 것들을 많이 봐서 에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덴마크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으로 가게 된다. 덴마크는 기업이 어린 학생들에게 해외유학 장학금을 지원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 가이세키 요리를 담는 그릇이나 향합같이 아주 정교한 나무그릇을 만드는 곳에서 일했다. 나무로 그릇이나 박스 같은 일본 전통 나무 기물을 만드는 일을 사시모노라고 한다. 사시모노의 최고 공방(스튜디오)들은 거의 다 오래된 도시 교토에 몰려 있다.

“제가 일한 공방의 선생은 공예가로서 나무 다루는 기술은 훌륭했지만, 미감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본인이 무슨 피카소나 되는 것처럼 자신의 스타일에 보수적이었지요.”

이즈음 일본의 한 건축디자인 시공업체 사장이 그의 눈썰미를 알아보고 협업을 제안한다. 건물 한 채를 그에게 내주었다.

“실내엔 한국 고가구들로 가득했어요. 19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헐값에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어쨌건 한국 가구와 사랑에 빠지게 됐지요. 사장은 아주 단순한 일본 집에 한국 가구가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아 컬렉션을 한 것입니다. 그는 뉴욕에 있을 때 록펠러가 집을 디자인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회사는 스키야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습니다.”

일본의 부유층은 집을 지을 때 서까래나 현관에 어마어마한 돈을 쓴다. 한국과 같이 좌식 구조의 일본 전통 집은 바닥에 앉으면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향하게 된다. 천장에 수억원을 투자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입식 생활을 하는 서양에선 의자에 앉으니 바닥에 시선이 가니 바닥에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사장은 일본 건축물에 어울리는 가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유행을 좇는 가구를 연구하면서 한편으론 덴마크 가구 디자인도 가르쳤죠.”

이 과정에서 그는 일본의 스키야건축 무형문화재인 나카무라 소토지를 알게 된다. 그의 아들은 덴마크 디자인을 통해 일본 것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싶어했다. 고세키공방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그는 18년 동안 그곳에서 가구숍과 갤러리를 함께 운영했다. 그는 건축물의 조명·가구·재질 등 모든 것을 조언하는 컨설턴트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건축가는 설계하고 시공업체는 시공만 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일본은 다이쿠라고 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하는 전통건축 장인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바로 나카무로 소토지입니다. 최근 세계적 경향은 일본처럼 설계와 시공을 함께하는 추세죠.”

일본이 지루해진 그는 중국으로 향한다.

“사실 데니시 디자인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명나라의 가구들이 인도를 거쳐 영국으로 들어왔고, 그 가구들을 덴마크가 나름대로 해석해서 내 놓은 것이 데니시 디자인입니다.”

그가 멀고 먼길을 돌아 결국 자신의 디자인 뿌리에 다다른 것이다.

“저는 덴마크를 떠나서야 비로소 덴마크 가구의 참모습을 깨달은 셈이지요. 그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밖에 나가면 보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걸 추천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브루스 채트윈은 유목민(방랑자)의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움직이면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쇠렌 마츠의 유목적 디자인 여정도 그럴 것이다.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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