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가루 집안’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고령화가족’(감독 송해성, 제작 인벤트 스톤, 배급 CJ엔터테인먼트)가 9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왜 가족 앞에 ‘고령화’란 말이 붙었나 했더니, 평균나이 47세란다. 69세 헌신적인 엄마(윤여정 분)를 비롯해 44세 철없는 백수 오한모(윤제문 분), 40세 인생 포기 직전의 둘째 오인모(박해일 분), 35세 잘하는 거라곤 결혼뿐인 미연, 그리고 미연의 당돌한 15세 딸 민경(진지희 분)까지.
눈만 마주쳤다하면 욕설에 폭력을 휘두르는 남매들은 엄마가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해 벌어온 돈으로 삼겹살을 구워주면 그때만은 순한 양처럼 꾸역꾸역 잘도 받아먹는다. 가장 사회적 활동이 왕성할 나이대인 35~44세지만, 경제력 있는 미연 외에는 ‘무능’ 일색이다.
이 영화에는 유달리 ‘먹는 신’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송해성 감독이 의도한 것으로, ‘먹방’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들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식구(食口)’란 의미 그 자체다. 아무리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 주는 가족이라도 삼시 세 끼 때만 되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삼겹살, 김치찌개, 닭죽 등 일반 서민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음식들이다.
“된장찌개에 다섯 숟가락이 푹 담가지는 부감샷이 등장하잖아요?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일지 몰라요.”
배우 박해일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 한 장면을 콕 짚어내 ‘고령화가족’의 주제에 대해 언급했다. 헬리코박터균이니 뭐니, 요즘 식탁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영화 속에서 연출됐다. 아무리 한 가족이라도 한 냄비에 숟가락을 담그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이들 가족들에게 만큼은 가능하다.

아무리 밉기 짝이 없어도 위기나 고통을 처했을 때는 같은 편이 되고 마는 게 가족. ‘고령화가족’은 ‘콩가루집안’이란 이미지(사실 콩가루가 맞긴 하지만)로 시작해 어느 가족보다도 끈끈한 가족애로 뭉친 집단이란 결론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
온가족이 보기에 다소 불편한 에피소드도 없지는 않다. 원작에 비해서는 표현이 훨씬 부드러워졌다고는 하나, 한모(큰 삼촌)와 민경 간 에피소드는 세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뒤 가족들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해나가는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건 바로 공감 때문이다. 가족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미묘한 감정들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고령화가족’만이 지니고 있는 미덕이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의 이야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다는 송해성 감독의 연출은 말 그대로 ‘살아있네~’,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바지 속에 손 넣고 방귀 뀌는 게 전부인 ‘총체적 난국’ 한모 역의 윤제문은 ‘이보다 더할 수 없는 100% 씽크로율’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고령화가족’은 현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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