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계단에 방치 비일비재
분리배출도 안돼 안전 위협
미래부, 5월부터 현장지도 서울 동대문구 A대학 자연과학관 건물 뒤편 공터. 이 건물에서 나온 쓰레기더미를 정리하던 청소노동자 B(63)씨가 병류를 분리수거해 놓은 자루에서 갈색 병을 꺼내보였다. 병 표면에는 급성독성 물질을 뜻하는 해골 기호 등이 그려져 있었다. 병 내용물은 황산. 음료수병 등과 함께 섞여 있던 황산 용기 두 개에는 모두 잔여물이 찰랑거렸다. B씨는 “눈이 침침해 글씨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글자들도 모두 영어”라며 “우리가 무슨 수로 내용을 아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 실험실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청소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유해물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학 측의 허술한 관리와 무관심으로 청소노동자들은 황산, 자일렌 등 실험 약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하지만 A대학은 실험실이 위치한 건물 세 곳 모두 복도 등에 방치된 시약공병, 폐유기용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C대학 과학원의 경우 쓰레기 봉투 겉면에 ‘실험 ×××호’, ‘일반 ○○○호’ 식으로 배출된 장소를 명기했다.
하지만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돼 청소노동자들이 다시 해체해 재분류하고 있다. 이 학교의 청소노동자는 “이 건물에서만 5년간 일했는데 냄새 때문에 속이 메슥거리고 목이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또 A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고 버리는지 관리하는 것도 학교 몫”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대학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하면) 용역업체가 산재보험에 따라 처리한다”고 말했다.
유해화학물질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이나 지침이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험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안전교육, 비상상황 시 대처방법, 건강검진 등을 받고 2년마다 정부 주도로 실태조사도 벌인다. 청소노동자들은 사고가 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아무런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미래부가 다음달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힌 현장지도 점검 계획에서도 청소노동 영역은 점검대상 밖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영은 연구원은 “실험실 안전의 대상은 학생뿐만이 아니다”라며 “청소노동자들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이 알권리 차원에서라도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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