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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광해’ 등 도플 갱어 작품 흥미진진… 숨겨진 욕망 메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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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를 의미하는 ‘도플 갱어’는 예나 지금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다. 크리슈토프 키에실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도플 갱어 소재의 대표적인 영화다.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같은 날에 태어나 평행적인 인생행로를 걸어 온 두 여성의 삶을 음울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미장센과 음악 속에 담았다. 이러한 소재는 대체로 환상적이면서 음험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곤 한다. 반면 도플 갱어가 확장된 ‘닮은꼴 테마’ 작품들은 사실감을 주면서도 흥미를 끈다. 동명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함께 ‘원 소스 멀티 유즈’로 기획되어 무대에 오른 연극 ‘광해’가 그러한 예다.

이 연극은 일종의 ‘왕자와 거지’ 소재를 취하고 있으며, 광해군과 똑같이 생긴 놀이패의 광대가 광해군 대신 왕좌에 앉아 벌이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모반의 위협에 시달리는 광해군은 위험한 밤 시간에 자신 대신 편전에 앉혀 놓을 사람을 구해 오라고 도승지에게 명한다. 이에 도승지가 찾아낸 사람이 바로 하선. 그는 저잣거리에서 광해군을 흉내내며 푼돈을 버는 광대인데, 광해군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한데 얼마 후 광해군은 원인 모를 독으로 몸이 상하여 앓아눕게 되고, 이를 숨기기 위해 도승지는 하선에게 왕의 대역을 시킨다.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15일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팩션’(실제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인 장르)이다.

연극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결말이 동명 영화와 다르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하다. 영화가 카메라 워킹과 몽타주로 여러 인물들의 심리와 궁궐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면, 연극은 무대의 특성에 맞도록 주인공 캐릭터와 갈등을 밀도 높게 보여줬다. 특히 다른 인물들의 비중을 줄이고 하선을 집중 조명했는데, 놀이를 통해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강조하여 결말의 비극성을 더 부각시켰다. 연극은 영화와 반대로 도승지와 상선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가까스로 도망쳤던 하선 역시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하선의 캐릭터를 더욱 클로즈업한 만큼 단순한 대역 광대였던 그가 진짜 왕처럼 정치와 민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과정이 개연성 있게 그려진다. 그와 함께 아이같이 천진한 하선과 포악한 광해군이 대조되면서 ‘선과 악’, ‘과거와 현재’의 대립구도가 뚜렷이 부각된다. 줄거리상 광해와 하선은 모습이 닮은 사람들일 뿐이지만, 한편으로는 동일한 사람의 서로 다른 면모를 상징하는 도플 갱어 테마의 변주를 느끼게 한다.

연극 '광해'는 광해군과 닮은꼴인 광대 하선이 얼마간 왕의 집무를 대신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도플 갱어’란 원래는 자신의 분신 혹은 영혼으로 해석되며, 죽음의 전조와 같은 괴담 형태로 묘사되기도 했다. 포의 ‘윌리엄 윌슨’, 호프먼의 ‘악마의 묘약’ 등 환상적인 낭만주의 소설들에서는 이를 통해 무의식과 억압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파우스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지킬 앤드 하이드’ 등도 도플 갱어 테마가 변주된 형태로 이야기된다.

특히 무대에서 도플 갱어는 한 사람의 다양한 인격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쓰이곤 한다. ‘광해’에서처럼 순수한 초심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파우스트’에서처럼 욕망의 극한에 몸을 내맡기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도플 갱어가 존재한다. 따라서 무대가 아닌 일상에서도 ‘마음속 거울’인 도플 갱어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과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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