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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담아낸 ‘한국인의 정서’

입력 : 2013-02-15 18:34:34 수정 : 2013-02-15 18: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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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아픔 그린 ‘덧없는 환영들’
6·25전쟁 참상 고발 ‘생존자’
4·19 이후 격동기 다룬 ‘그대에게…’
입양·이민세대가 쓴 외국어 소설, 한국문학의 영역 확대 계기로
“한국문학은 한국 민족에 의해 한국어를 기반으로 계승하고 발전해 온 문학을 말한다. 한국문학의 창작 주체는 한국 민족이고, 한국문학은 한국어를 통해 이뤄진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2004년 출간한 ‘한국현대문학대사전’(서울대출판부)에 나오는 한국문학의 정의 일부다. 한국 민족이 한국어로 쓴 작품이라야 한국문학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면 한국 민족이 외국어로 쓴 시나 외국인이 한국어로 쓴 소설은 한국문학의 범주에 들까, 안 들까.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국문학’의 개념도 다시 정립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계 미국인이 영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작품 출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비록 영어로 쓰여졌지만 한국 역사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왼쪽부터 제인 정 트렌카, 이창래, 새뮤얼 박
제인 정 트렌카의 장편소설 ‘덧없는 환영들’(이일수 옮김, 창비)은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으로 입양된 이들이 겪는 혼란과 아픔을 다룬 작품이다. 저자는 출생 직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미국 백인 가정에 입양된 경험이 있다. 입양이 가져온 근원적 상처,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겪는 차별,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이질적 세계를 혼란스럽게 오가며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그는 현재 서울에 살면서 ‘입양문학’으로 불리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유희석 전남대 교수는 “제인 정 트렌카의 소설을 읽으면 온갖 종류의 ‘분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면서 “그의 작품은 미국문학인 동시에 ‘한국문학’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3살 때 미국으로 이민한 이창래의 ‘생존자’(나중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는 6·25전쟁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다. 한국인 전쟁고아와 미군 병사, 미국인 선교사 아내 등 3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피란민들이 한 줌의 옥수수 가루를 얻기 위해 서로 죽이려는 모습, 군인들이 여성 피란민들에게 성폭행을 일삼는 장면 등의 묘사는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다. 2011년 미국에서 권위가 높은 데이턴 문예평화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도 오를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새뮤얼 박 또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소설가다. 그의 첫 장편소설 ‘그대에게 가는 길’(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은 4·19혁명부터 1980년대 경제적 번영기까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다. 청순한 여대생이 순간의 실수로 괴팍한 남성과 결혼한 뒤 온갖 풍지평파를 겪으며 결국 첫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내용을 감각적이고 유려한 문체로 풀어냈다. 2살 때부터 미국에서 산 생 박의 장편소설 ‘땅거미가 질 때까지 기다려’(김우열 옮김, 문학동네)도 한국적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수작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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