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호 유동근 성동일 등 쟁쟁한 베테랑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그는 날카로운 눈빛과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결코 기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20살 중반에서 30살 무렵까지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해적, 디스코왕 되다’ 등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며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큰 교통사고를 당하며 힘든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후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연기자의 꿈에 도전했다. 비중 있는 형사 역할로 ‘무법자’(감독 김철한·2009)에 출연했지만 흥행에는 실패. “그래도 내가 가야할 길은 연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김태환은 최근 세계닷컴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줬다. 지난해 ‘비정한 도시’(감독 김문흠·10월 개봉), ‘가문의 귀환’(12월19일 개봉), ‘신의 선물’(감독 문시현·2013년 개봉 예정) 등 세 편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는 행운도 누렸다.
데뷔 초, A4 크기 종이 한 장에 자기소개글과 프로필을 빼곡히 적어, 100장을 프린트해 직접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알렸다. 소속사 없이 활동하느라 배우 체면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배우란 직업 못지않게 매니저일도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허풍을 떠는 그다. ‘무조건 밀어붙이기, 무작정 도전하기’가 최고 장점이라고 단언하는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에 도전하라고 해도 자신있다”고 말했다.
최근작 중 가장 대중에 친숙한 작품인 ‘가문의 귀환’에서 그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다 못해 악랄하고 살벌하기까지 한 망치 역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소화해냈다. “스크린에 너무 무섭게 나온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지적에 “그런가. 생긴 것도 무서운데 표정까지 너무 심했느냐”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에 맞춰 연기하느라 그런 것이라며 “괜찮다”고 덧붙였다.
김태환은 2013년에도 달릴 것이다. 그는 현재 영화 두세 작품과 케이블 드라마 출연을 고려 중이라며 “올해는 뭣보다 대중에게 얼굴을 확실히 알리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배우 김태환과 나눈 일문일답.

▲ 하하. 그랬나. 안 그래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관객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고 ‘내가 너무 심했나’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용기 감독님이 더 세게, 강하게 나와야 한다고 주문하셨기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조금 살벌해 보여도, 배우인데 그런 것 가지고 투덜거릴 수는 없다.
-지난해 쉬지 않고 연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 다행히 쉬지 않고 작품을 찍고 있다. ‘비정한 도시’는 사실 재작년에 찍어둔 작품이어서 지난해에는 보충촬영만 했다. 작년 여름 김기덕필름이 제작한 ‘신의 선물’ 촬영을 끝내놓고 곧바로 ‘가문의 귀환’ 촬영에 들어갔다.
-‘신의 선물’은 어떤 영화인가.
▲ 현재 후반작업 중인데, 불임인 여자가 미혼모 한 명을 수소문해 애를 대신 낳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두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해 산 속 오지마을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사냥꾼 등 마을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나는 세 명의 사냥꾼 중 한 사람 역을 맡았다.
-지난해 송년회에서 김기덕 감독을 만났다고.
▲ ‘신의 선물’이 김기덕필름 제작이라 송년회에서 김 감독님을 만났다. 카리스마 있고 엄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뵈니 겸손하고 신사답고 다른 사람 얘기도 잘 들어주셨다.
-긴 무명생활에도 연기를 놓지 않은 이유.
▲ 배우가 되고 싶은 갈망과 목표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25살 때 ‘태양은 없다’(감독 김성수)로 충무로에 데뷔했는데, 중간에 교통사고로 3년 쉰 것 빼고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어느 날 혼자 포장마차에서 한 잔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배우가 되기에 잘 생긴 것도, 그렇다고 능력이나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저만의 필살기랄까. 혼자 영화사를 수도 없이 돌아다니며 자신을 알렸다. A4 용지에 한 가득 저에 대한 소개글과 프로필을 적어 100장을 출력해 영화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한 번 만난 관계자라도 안부전화 자주하고 살갑게 인사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 예전에는 40대가 되면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외향적인 성격이 정치에도 어울릴 거란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할리우드에 가서 엑스트라라도 해보고 싶다. 현장박치기랄까.(웃음) 사실 대학원 진학할 때 유학을 잠시 준비한 적 있다. 지금도 그 꿈이 조금은 남아있다. 제 성격상 미국에 일단 가면 ‘아메리칸 아이돌’에 지원서쯤은 내볼 것 같다. 일단 부딪쳐보는 성격이니까.
-‘가문의 귀환’에서 비중있는 역 맡아보니 어땠나.
▲ 사실 촬영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많았고, 혼자 무미건조하고 살벌한 캐릭터라 괜히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첫 대본 리딩날부터 ‘멘붕’이 왔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한석규, 최민식 등 참고할 수 있는 선배들의 연기는 모두 관찰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니 현장에서 아마추어 같은 모습도 보이고 말았다. 긴장되고, 대사도 엉키고…. 아직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배우의 꿈을 이룬 소감.
▲ 꿈은 이뤘는데, 꿈 때문에 힘겨웠고, 꿈 때문에 즐거웠다.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꿈이다. 앞으로도 더 달릴 계획이니 ‘배우 김태환’ 많이 기억해달라.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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