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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찾은 종교의 자유…"삶의 희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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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 받은 수단인 통일교 신자 모하메드씨
서른살 때 통일교 선교사 만나 이슬람서 개종
정부 탄압에 ‘살얼음’… 교사직 잃고 가족도 외면
자유 찾아 한국行… 법원 “종교 신념 보호 마땅”
타릭 모하메드(48)는 아프리카 수단이 고향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지 어언 20개월이 흘렀다. 불법 체류자로 숨어 지내던 그는 강제 추방돼 수단에서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하루하루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이제 언어와 인종·문화·풍습이 전혀 다른 한국 땅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했기 때문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한국에서 새 삶을 꾸리려는 이유는 뭘까.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타릭 모하메드가 25일 경기도 가평 숙소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목숨과도 바꿀수 없었던 종교


모하메드는 1964년 수단 북동부 게지라주의 작은 마을 아자자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주민 70% 이상이 이슬람 원리주의 수니파를 믿는 ‘무슬림 공동체’였다. 모하메드 역시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고 자신도 무슬림이었다.

대학 졸업 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의 평범한 일상은 서른 살 되던 1994년 큰 변화를 맞았다. 포교를 위해 수단을 찾은 통일교 선교사와 ‘운명적 만남’을 가진 것. 모하메드는 통일교 산하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이어갔고 1997년엔 통일교로 개종했다.

모하메드의 선택은 수단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수단에서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감시 ‘살얼음’ 생활

그의 인생은 개종 이후 송두리째 변했다. 교사직을 그만뒀고 가족들조차 그를 외면했다. 심지어 수단 정부는 종교와 상관없는 NGO 활동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NGO 사무실은 1999년 정부 요원들에 의해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해는 그의 종교적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은둔의 신앙 생활을 계속했고, 2010년 어학연수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와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맛봤다.

행복도 잠시, 그는 연수를 마치고 2011년 1월 수단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국은 이슬람계 북부 정부와 기독교계 남부 정부로 갈라졌고, 이슬람계가 장악한 고향은 종교 탄압이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특히 모하메드는 ‘요주의 인물’로 간주돼 귀국 직후 사복경찰 4∼5명의 감시를 받았다.

◆“종교 신념은 보호 마땅”

모하메드는 결국 한 달 만인 지난해 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 4월 출입국사무소에 종교 탄압에 따른 난민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냈지만 거절됐고, 올해 2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마침내 법원은 모하메드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모하메드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소수 종교나 특정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받는 외국인은 난민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모하메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계속 지켜나갈 각오다. 그는 “한국 법원이 삶의 희망을 줬다”며 “조국이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면 언제든지 돌아가 나의 신념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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