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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국내 첫 ‘야철대장’ 이상선 고려왕검연구소장

입력 : 2012-12-23 18:29:06 수정 : 2012-12-23 18: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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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째 부르는 ‘칼의 노래’
“劍엔 선조들 호국정신 담겨… 고려 검 재현 온힘 쏟을 것”
“열여섯살 때 집안 어른인 영친왕 제사에 참배하러 갔다가 처음 사인검(四寅劍)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칼을 보고 만들어서 갖고 싶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검의 전문가로 불리게 됐습니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 선곡리에 있는 옛 선남초등학교 건물에는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날이 선 칼과 창이 가득하다. 단층으로 지어진 학교 건물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도검, 창 등 병장기로 가득 차 있어 마치 조선시대 무기고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폐교는 현재 고려왕검연구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주인은 42년째 도검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이상선(58)씨. 충남 예산 출신으로 16세부터 도검에 흥미를 느껴 지금까지 도검 외길 인생을 걸어오고 있다. 이씨는 2007년 11월 고용노동부에서 전국 처음으로 전통 야철도검 기능 전승자로 지정돼 국내 최초의 ‘야철대장’으로 임명됐다.

이씨가 2000년 인천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것은 모든 것을 잊고 검 제작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이씨는 “내 이름 마지막 글자인 ‘선’이 착할 선(善)이었는데 오래전 작명가의 권유로 신선 선(仙)으로 바꿨습니다. 이곳 지명도 선곡(仙谷)리인 걸 보면 이곳으로 와야 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씨의 연구소 명칭은 고려왕검연구소지만 실제는 고려시대가 아니라 조선시대 도검을 재현하고 있다. 이씨는 “처음에는 고려시대의 검을 연구하기 위해서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관련 기록이 전혀 없어 우선적으로 조선시대 검부터 재현하고 있으며 앞으로 고려시대의 검을 재현하는 데도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상선씨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들어보이며 칼의 특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도(刀)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칼처럼 한쪽만 날카롭게 날이 서 있고, 검은 양날이 모두 날카롭다.

도는 과거 장군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부하들을 지휘할 때 사용하던 지휘용 칼로 칼과에 속하고, 검은 병사들이 전쟁에서 적을 찌르고 베기 쉽도록 만들어져 창과에 속한다.

이씨가 이처럼 조선시대 도검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고려시대 도검과 마찬가지로 검의 길이와 특성, 형태에 대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 연구하는 학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의 도검 등 병장기 생산을 금지한 데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도검 연구가 끊겨 100년 동안 조선시대 도검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대장간과 목공소, 함석집을 찾아다니며 칼을 벼리는 방법, 목제 칼집을 만드는 법, 칼 장식을 만드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전통칼에 대한 기록과 지침이 없어 박물관에 가서 전통검의 형태를 독학하느라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씨는 “도검을 만들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쉽게 나오지 않아 3년을 기다린 끝에 1990년부터 정식으로 칼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인검’
이씨가 재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과거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됐던 사인검이다. 12간지 중 무인을 상징하는 호랑이 인(寅)자가 네 번 겹치는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제작된 칼로 12년에 한 번씩 만들 수 있는 사인검은 하늘을 대신해 불의를 베어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거나 북두칠성이 상감되어 있다. 이씨는 지금까지 7개의 사인검을 만들어 3개를 소장하고 있다.

이씨는 또 올해 왕들이 장식용이나 호신용으로 지녔던 검으로 용의 기운이 4번 겹친 사진검(四辰劍) 3자루를 만들었다. 사진검은 용의 해인 진년(辰年)과 진월인 4월(음력 3월), 진일인 4월13일(음력 3월23일), 진시(오전 7∼9시)에 만든 칼로 사악한 기운을 베어낸다고 알려지고 있다.

옛 대장장이들은 철광석을 녹여 만든 철로 검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제철소에서 구입한 길이 40㎝, 두께 2.5㎝의 철을 두드려 칼을 제작한다. 원래 모든 제작과정을 수작업으로 해야 하지만 일을 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나온 궁여지책이다.

단조 작업을 통해 칼날의 모양을 만든 뒤 풀무질을 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쇠막대기를 두드린 후 다시 물에 넣어 담금질을 하는 열처리 과정과 빛이 나도록 광택을 내는 연마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칼날이 만들어진다.

열처리 과정에서 많은 불량품이 발생하는데 열을 받은 쇠는 굽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칼날이 휘어진 형태의 도는 비교적 쉽게 완성품이 나오지만, 검은 형태가 직선이어서 불량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완성률이 10%도 안 된다.

연마 과정을 마친 칼은 쉽게 부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칼날 부분에 부드러운 금속 성분을 입혀야 한다. 이 때문에 잘 만들어진 칼의 칼날에는 구름 모양의 무늬가 생기기 마련이다.

칼은 강하기만 하면 쉽게 부러진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녀야만 비로소 좋은 칼로 꼽힌다.

이상선씨가 칼의 형태를 갖춘 쇳덩이를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풍로의 뜨거운 불로 가열하고 있다.
칼을 만들고 나면 칼집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도검을 살상용이 아닌 장식용으로 소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제작자들은 칼집과 손잡이 장식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이씨가 만든 장식용 도검은 칼집 겉면은 가오리 가죽을 사용하고, 내부는 호두나무나 감나무로 만들어 부드럽게 칼날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손잡이는 황동에 은으로 문양을 새긴 상감기법을 사용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품과 위압감이 느껴지고 칼에는 섬뜩한 푸른색이 감돌곤 한다.

전시실에는 일반인들이 사극에서나 볼 법한 지팡이 검과 죽통을 칼집으로 사용했던 검, 칼날에 대종교 경전인 천부경을 새긴 검 등 다양한 칼이 전시돼 있다.

제작된 검이 일반인들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일반 장검을 한 개 만드는 데만 15일 이상이 걸린다. 소비자가 구입하고 싶어도 도검 및 총포 화약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전에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검도인들이 소장하려는 일반 장검은 개당 100만원이 넘어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최근에는 진검을 사용하는 검도장이나 명품 칼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영화 ‘왕의 남자’에도 그가 만든 칼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면서 전국 검도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상선씨가 칼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형태만 갖춘 칼을 차가운 물에 담그는 담금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검을 만드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용해온 도검을 누군가는 재현해 그 기상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려와 조선시대 도검을 재현해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절개와 호국 정신을 알려주는 데 앞으로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 성대(30)씨가 아버지를 도와 도검을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어 이씨는 마음이 든든하다.

이씨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기능인 봉사단체인 대경기능봉사회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지난여름에는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성주 지역을 찾아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는 등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또 구미에 있는 모 대학 학생들과 함께 시골마을 독거노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고장난 전기시설 수리를 해주는 등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검을 만드는 일도 뒤로 미루고 달려가곤 한다.

이씨는 “매년 500시간은 봉사활동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올해는 300시간밖에 하지 못해 지역 주민들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라며 “앞으로도 이웃들에게 받은 성원을 불우한 사람들에게 되갚아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구=전주식 기자 jsch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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