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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의 보석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입력 : 2013-03-20 11:11:39 수정 : 2013-03-20 11: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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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세르비아의 폭격에 유럽 지성들이 인간방패로 맞서 지켜낸 보석
수많은 역경 딛고 1300년간 아름다운 사연까지 품고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세계 명승지를 두루 다녀본 여행 고수 중에서 최고의 바다로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를 꼽는 사람이 여럿 있다.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의 좁고 긴 해협. 북부 지중해인 이 바다의 동쪽 해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날씨가 화창하고 리아스식 해변이 빚어내는 풍광이 빼어나 수천년 전부터 천혜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여행지가 아닌 크로아티아가 유럽인들에게는 스페인 못지않은 지중해 여행지로 인기를 모으는 것도 바로 이 아드리아해 때문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질녘 스르지산 중턱에 오르자 아드리아해로 석양이 가라앉은 직후 성벽 주변 바다와 하늘이 환상적인 색채로 물든다.
이 크로아티아 남서부 해안을 달마티아 지방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딱 한 도시만 꼽아 여행을 하라고 하면 선택은 두브로브니크(Dubrovnik)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렀다. 슬라브어로 ‘참나무 숲’이라는 뜻을 지닌 두브로브니크는 인구 4만5000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올여름에만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고대에서 근세까지 그리스·로마·베네치아·프랑스·오스만튀르크 등 외세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달마티아 지역의 해안도시에는 빠짐없이 방어용 성채가 들어서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예로부터 견고하고 조형미가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성채.
7세기 무렵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한 두브로브니크에 성벽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8세기부터이며, 15∼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길이가 1949m에 달하는 성벽 안에는 고대와 중세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옛 시가지는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세워진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작은 카페. 석양을 즐길 수 있는 이 카페에서 여행자의 행복감은 절정에 달한다.
두브로브니크를 비롯한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꽤 깊어 보이는데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푸른빛 바다다. 이 코발트색 바다 위로 거칠게 솟은 근육질 절벽, 다시 그 위에 세워진 하얗고 미끈한 성벽, 그 안에 들어선 붉은색 지붕의 건물들이 빚어내는 풍광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바꿔가는 성벽은 몇 번을 봐도 매번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성벽 위를 걸은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절벽과 그 위의 성벽 높이까지 합하면 50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성벽을 걸으면 발아래로 아드리아해의 푸른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고, 빛나는 지중해의 태양이 이 바다 위에 드리워 있다. 바이런이 ‘지상낙원’이라고 감탄한 것도 바로 이 풍광 때문이었으리라. 

성벽 아래 절벽이 조금 튀어나온 공간에는 작은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짜릿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카페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석양 명소이기도 하다. 해질 무렵이 되자 모두들 서쪽 바다를 향해 앉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성벽 뒤쪽의 스르지산 정상(412m)에 오르는 것도 좋다. 스르지산 정상에서는 바로 위에서 성채를 내려다보게 된다. 성채를 비켜서 내려다보고 싶다면 도로를 따라 스르지산 동쪽 중턱으로 올라가면 된다. 

건물 사이 좁은 골목을 걷는 것도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재미다.
성벽 안 옛 시가지도 매력 만점이다. 동서로 쭉 뻗은 스트라둔 대로에 수백 년 전 조성된 대리석 보도블록은 수많은 사람이 밟고 다녀 반질반질하게 닳아버렸다. 서쪽 출입구인 필레문, 동쪽 끝의 루자 광장, 성 블라이세 성당, 렉터 궁전, 성모승천 대성당, 필레문 밖 바닷가의 로브리예나츠 요새 등은 여행자의 감성을 수백 년 전 중세시대로 돌려놓는다. 한두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도 음식점과 기념품점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브로브니크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667년에는 대지진이 덮쳤고, 1991년에는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가 주축이 된 유고연방군이 폭격을 퍼부어 건물 지붕의 70%가 파괴되기도 했다. 이때 프랑스 작가인 장 도르메송 등 유럽의 지성인들은 폭격을 중지시키기 위해 ‘인간사슬’을 시도하기도 했다. 내전이 끝난 후 시민들의 열성적인 복구로 두브로브니크는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이 성벽은 수많은 역경을 견뎌내고 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어 오늘날 명소로 더 각광받는 게 아닌가 싶다.

두브로브니크=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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