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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단전호흡법으로 연기 지도…강만홍 서울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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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05 17:57:42 수정 : 2012-11-05 17: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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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연기와 호흡하다…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한 호흡
대사·움직임도 그 안에 있어…숨 공부는 연기의 시작이자 완성
정적의 공간에 몸짓들이 무성하다. 숨소리만이 공기를 가를 뿐이다. 이따금 산사의 종소리를 닮은 티벳바라(띵샤)가 울린다. 청아한 긴 울림이 몰입으로 이끌면서 몸짓들은 커다란 리듬이 된다.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의 몸짓이다. 수행자의 명상춤이 연상된다.

강만홍(62) 서울예술대학 연기과 교수의 연기지도 강의실 풍경이다. 강 교수는 단전호흡을 바탕으로 한 ‘움직이는 명상’을 통해 연기지도를 하는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숨 안에 시간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 한 호흡에 머물지요. 소리와 대사, 움직임, 그리고 침묵의 리듬도 호흡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숨은 시간이요 공간이며 리듬이라는 얘기다. 연기행위가 시공간의 리듬이 아닌가.

“인간은 자궁의 공간에서부터 호흡을 하게 됩니다. 생명, 그 여정의 시작인 것이지요. 원초적 숨을 알면 연기는 저절로 풀어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춤과 노래, 모든 공간 창출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배우가 무대에서 광기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우는 극의 흐름에 대한 자신의 행동변화를 통제하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연기의 이중성이자 깊이라 할 수 있다. 광기와 절제, 그리고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호흡 때문이다. 감성라인이 호흡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 호흡 안에 대사가 머물지요. 움직임과 춤도 그 안에 있습니다. 연기자는 수행자들의 호흡 공부에서 공간과 연기 그 속에 담긴 오묘함을 찾아가야 합니다. 생사의 찰나도 거기에 있고, 창작의 찰나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 찰나가 영원으로 이어지지요.”

강만홍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호흡이 짧아 5분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며 “단전호흡이 절로 되며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오행도인체조가 연기지도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끝없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마음속 허울들이 하나 둘 벗겨져 나가는 가벼움을 맛볼 수 있다. 연기란 어쩌면 자기를 끊임없이 비워 가는 수행의 길이 아닐까.

“멈춤의 호흡은 생각을 사라지게 합니다. 잡다한 사념의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매 순간 오고 가는 사념의 뿌리, 그 번거로운 생각을 잠재우게 하는 것이 숨입니다. 집중이 안 될 때 숨을 통해 몰입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지요.”

그에게 숨 공부는 연기의 시작이자 완성의 단계를 담고 있다. 숨의 공간을 터득할 때 대사를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춤이며 변신의 캐릭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갖는 것보다 비우기가 더 어려운 공부지요. 연기를 한다는 것은 먼저 내가 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비움 속에 성격 구축이 시작되고 캐릭터 공간이 생겨나지요. 칠판에 써 논 글씨는 잘 지워내야 하는 이치와 같지요. 그래야 다시 칠판 위에 다른 글씨를 썼을 때 쓰인 글씨가 선명하게 잘 보이게 되지요. 배우는 늘 깨끗하게 지워져 있는 칠판 같아야 합니다.”

그는 비우고 몰입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을 ‘제로 스페이스’라고 부른다. 늘 비워져 있는 유리컵 같은 모습이랄까.

“연기자가 된다는 것은 비움을 통해 내면과 외적인 공간, 그리고 동물적인 차원에서 신성 차원까지를 넘나드는 것입니다. 영성이 뛰어난 자들의 행위인 것이지요. 자신의 몸을 악기나 캔버스 삼아 연주와 그림을 그리는 자들입니다.”

그는 제로 스페이스가 순도 높은 내면으로 이어지는 창이라 했다. 분별과 불안, 긴장과 초조와 동요의 감정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호흡법을 통해 가을하늘 같은 제로 스페이스에 이르면 사람들은 칠정의 감정을 토해내고 평안에 이르게 된다. 언제 웃고 울부짖었나 싶을 정도다.

“한 호흡이 몸과 영성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연기의 문을 여는 것이지요.”

모두가 하나 되어 버린 분별이 없어진 시공간, 그 대자유의 몸짓이 호흡을 터뜨리며, 그 숨의 폭발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 간다. 온몸으로 호흡을 맞이하고 보내고, 마치 첫 태어남에서 울어댔던 그 첫 숨의 들이마심과 내심처럼 자아가 비워진 자리, 그 어떤 생각도 머물지 않는 몸에 오로지 호흡만이 밀물과 썰물처럼 넘나들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학생들의 호흡에 리듬이 생기면서 점점 깊어지고 빨라지고 강해지고 있다. 순간 태풍이 몰아치듯이 화산이 폭발하듯이 진양조 장단이 휘모리 장단으로 마치 한 음처럼 한 장단처럼 된다. 엄청나게 빠른 호흡으로 치달아 올라간다. 그 리듬마저 넘어버린 호흡의 분출, 아니 분출도 아니며 들숨도 날숨도 아닌 숨의 큰 머묾이다. 텅 빈 몸에 숨만이 남고, 나옴도 들어감도 없는 호흡을 꽉 지고 머물러 있다. 멈춤의 시공간인 것이다. 호흡을 내쉬지도 들이쉬지도 않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호흡도 절정의 멈춤에 빠진다. 숨의 기운은 엑스터시로 바뀐다. 숨은 환희의 공간으로 바뀐다. 순수의 공간은 바로 트랜스의 공간으로 이끈다. 숨이 멈춰 버린 그러나 숨이 살아 있는 시공간에 머문다. 거기서 다 비워낸 자아가 춤을 추고 있다. 절대 무의 공간이 펼쳐진다. 한없이 열려져 있다. 니르바나의 공간이다. 삼매의 경지다.

“배우가 체득해야 할 순수공간이지요. 숨과 함께 일탈을 넘어 해탈의 언덕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때 세포 하나하나에서 숨을 나누며 영혼의 층이 이어지게 됩니다. 자아가 사라진 곳에서 몸과 영혼과 마음이 열린 그 호흡의 다리에서 영혼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영성의 언덕에 오르는 것이지요.”

알 파치노를 배출한 뉴욕의 극단 ‘라마마’에서 수석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연기자 교과서로 통하는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을 넘어서 자신만의 연기 지도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요즘엔 미국 캘리포니아 ‘칼아트’의 연기영상 강의도 맡고 있다. 한때 그는 10여년을 이 산 저 산, 이 나라 저 나라, 이 절 저 절을 떠돌아야 했다. 인생의 만행길이었다. MBC 18기 탤런트 교육의 호평에 힘입어 KBS 14기 탤런트 교육을 맡으면서 예기치 않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담, 이브, 사과나무, 뱀의 역할을 나눠 즉흥연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아담 역을 맡은 탤런트가 스스로 나체 연기를 펼치면서 일이 벌어졌지요. 역할에 빠져들면서 14기 모두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동참하게 됐어요. 연기교육을 제대로 시킨 벌을 받은 셈이지요.”

손현주 이병헌 전도연 장진(영화감독) 황정민 안재욱 신동엽 이휘재 김용만 유재석 정재영 유승룔 유혜진 등 연예계의 쟁쟁한 얼굴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연기자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특별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을 철학자 이상으로 깊게 하고, 행동은 걸림 없이 수행자처럼 넘나들고, 몸짓은 춤꾼 이상으로 아름답게 풀어내고, 말과 노래는 소리꾼 이상으로 파장을 만들어 내야죠. 그리고 늘 설렘을 지니는 ‘한 경지의 놀이’가 돼야 합니다.”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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