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만의 전세’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계 연구로는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주택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옛 환경이다. 과거 전세는 집주인이 목돈을 조달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이었다. 여기에다 오르기만 하는 집값이 거들었다. 너도나도 집을 사려는 세태에서 전세는 좋은 발판이었다. ‘전세 끼고 집 사재기’라는 과거 유행이 말해준다. 전세가 주택투기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주택 서민 입장에서도 장점이 없지 않았다. 월세에 비해 주거안정을 꾀할 수 있는 제도였다. 어디까지나 전셋값이 ‘합리적’일 때 얘기다. 집값이 무섭게 하락 중인 요즘엔 전세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54%로 9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집을 사려는 이가 확 줄면서 전세 수요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터에 전세물량은 줄었다, 초저금리에 경기침체로 목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자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한 탓이다. 거액의 보증금을 내야 하므로 말이 월세지, 기실 이도 ‘반(半)전세’이지만 말이다.
‘집값 하락 속 전셋값 상승’엔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원론만으로는 ‘기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하우스푸어의 ‘전셋값 올려 버티기’를 간과할 수 없다. 근본적 배경은 빚이 부풀린 주택가격 거품이다. 은행권만 따져도 9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09조원이 넘는다.
전셋값 급등은 역설적으로 거품 붕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그널인 셈이다. ‘하우스런’(매도폭주)이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국은행은 최근 이 가능성을 언급했다. 전세는 존속할 것인가. 한국만의 주택임대차제도도 운명의 시간을 맞을 듯하다.
류순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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