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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에 담긴 의미와 역사적 변화과정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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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지음/윤상설 그림/처음주니어/1만원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규희 지음/윤상설 그림/처음주니어/1만원


대한민국의 대문이자 얼굴로 여겨지는 국보 1호 숭례문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화재로 복구공사 중인 숭례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이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숭례문에 담긴 의미와 숭례문의 역사적인 변화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08년 2월10일 오후 8시50분. 조선 태조 때 건축된 건물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숭례문 2층 누각에서 화재가 발생해 누각이 내려앉았다. 화재로 숭례문은 골조만 남긴 채 불탔으며 천장 기와를 비롯한 누각이 전소됐다. 시민들은 눈 앞에서 무너지는 숭례문을 보며 일제히 탄식했고, 언론은 뒤늦게 당국의 소홀한 문화재 관리에 대해 질타했다.

저자는 연말 숭례문의 복구 완료를 앞두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의 숭례문에 대해 제대로 알 것을 주문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남쪽 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던 숭례문은 1396년 한양성곽과 함께 만들어졌다. 조선 태조는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도성을 둘러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으로 4대문을 냈다. 4대문 사이로는 4소문을 냈다. 이 4대문과 4소문 중 가장 중요한 문이 바로 ‘예를 높이는 문’이라는 뜻을 지닌 숭례문이다. 숭례문은 조선에서 가장 큰 문으로 한양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의 대상이었으며, 지방 사람들에게는 한 번 보고 가면 큰 자랑거리가 되는 문이었다. 

서울 숭례문 복원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지붕의 추녀와 석가래 및 내부 단청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숭례문은 12월 완전 복구돼 일반에 공개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숭례문은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임진왜란이라는 난리에도 온전하게 보존돼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문의 양끝으로 이어져 있던 성곽이 허물어지고 그 옆으로 전차와 차들이 다니게 되면서 600년 조선의 대문으로 위엄을 자랑하던 숭례문은 훼손되어 점점 초라하게 변해 갔다. 이후 달리는 차들과 높은 빌딩에 둘러싸여 외딴섬처럼 서 있던 숭례문은 2006년 중앙 통로를 개방하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나라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갑작스런 방화로 임진왜란과 6·25전쟁 난리도 무사히 겪은 숭례문이 한순간의 어이없는 방화로 무너졌다.

문화재청은 이후 화재 때 살아남은 건축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 숭례문의 역사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일제 시기 망가진 부분을 새롭게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침내 12월이면 6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지켜온 숭례문의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복구된 숭례문을 우리가 어떻게 지키고 보전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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