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독거노인위해 써달라” 광주광역시에 분홍색 마스크를 쓴 기부 천사가 나타나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16일 낮 12시 광주시 남구 양림동주민센터에 분홍색 마스크로 얼굴을 대부분 가린 40대 초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민원인 1명과 직원 2명밖에 없던 사무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순간 긴장했다.
이 여성은 5만원권 지폐가 든 봉투를 주민센터 직원에게 불쑥 건넸다. 잔뜩 긴장한 주민센터 직원에게 “적은 돈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말만 남겼다. 직원이 “누구신지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익명의 독지가는 뒤따라 나온 직원을 뒤로한 채 자신이 타고 온 경차를 몰고 사라졌다. 단 2분 만에 400만원을 기탁하고 소리 없이 떠난 것이다.
이 분홍색 마스크 기부천사는 한 시간 정도 흐른 오후 1시쯤 광주 동구청 복지과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모자까지 착용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구청 직원이 말을 건네자 그는 “아동과 독거노인을 돕고 싶다”며 가방 속에서 돈봉투를 꺼냈다.
영수증 처리를 하려면 인적사항이 필요하다는 직원의 말에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다. 좋은 일에 써 달라”는 말만 남긴 채 황급히 청사를 빠져나갔다. 봉투 속에는 5만원권 지폐와 수표 묶음 등 1100만원이 들어있었다.
이날 갑작스러운 분홍색 마스크 천사의 출현에 구청에서는 신원 확인에 나섰지만 헛수고만 했다. 남구와 동구에 나타난 기부천사는 동일 인물로 확인됐다. 그가 무슨 이유에서 거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두 구청은 기부천사의 뜻에 따라 소년소녀가장과 홀몸노인들에게 올겨울에 성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광주 남구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온정의 손길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슴 따뜻한 소식”이라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이웃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천사들이 있어 소외계층 주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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