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29일 밤, 인천국제공항에 코끼리 2마리가 도착했다. 당시 5살 된 수컷 코끼리 ‘가자바’와 6살 암컷 ‘수겔라’는 이국적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만리 타국 스리랑카에서 왔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 노동자에게 친절을 베푼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스리랑카 대통령이 직접 보낸 선물이었다. 그 한국인은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로 불리는 (사)지구촌 사랑나눔 김해성(51) 대표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베푼 작은 친절이 코끼리 한 쌍으로 돌아왔다”며 “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받은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고충 해결사
그와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86년 경기도 성남에 개척교회인 ‘산자교회’를 설립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현실을 개선하고 이들을 선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목사라기보다는 ‘투사’에 가까웠다. 폭행당한 노동자들을 치료해주고 해고당한 이들을 교회에서 먹이고 재워주면서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은 물론 각종 시국집회에 앞장서면서 고막이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는 ‘매 맞는 목사’로 유명했다”며 “유치장에 갇히고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인들과 중국동포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의 시선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한 그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초 팔이 잘린 필리핀 노동자를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울 때만 해도 앞으로 20년 넘게 이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업주가 ‘아는 경찰’을 들먹이며 보상을 해주지 않으려 했는데 공교롭게 그 경찰이 성남에서 우리 교회를 담당했던 정보과 형사였다”며 “결국 그 자리에서 합의를 이끌어내 1500만원을 보상해줬다”고 회고했다. 연이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한 중국동포 사건에서는 성남시장과 국회의원을 설득해 유족이 제시한 보상금(800만원)의 11배인 8800만원을 받아냈다.
두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는 “성남에 있는 김해성 목사를 찾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다. 이때부터 그의 주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해결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94년 성남 지역에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중국동포의 집을 각각 설립해 본격적인 상담·지원을 시작했으며 2000년에는 중국동포들이 밀집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으로 거처를 옮겨 ‘지구촌사랑나눔’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정착을 돕고 피해 지원을 하는 동시에 외국인 인력 도입정책 개선과 재외동포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이들을 보호해줄 법률 제정에 나서는 과정에서 농성과 삭발, 단식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공적상을, 2007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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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성 목사(오른쪽)가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에서 스리랑카의 언어지원가 프레마 랄씨와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그가 안온한 목회자의 삶 대신 험난한 투쟁의 길을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을 뒤흔든 두 개의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2년 가을에 일어났다. 전북 익산에서 서울로 전학온 첫날, 책보를 둘러멘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소풍왔느냐”, “책을 보자기에 싸갖고 왔다”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보자기에 메고 다니는 까닭에 영문도 모른 채 비웃음을 참아낸 그는 급기야 수업시간에 국어책을 사투리로 읽다가 또 한 번 놀림감이 됐다. 그가 울음을 터뜨리자 담임교사는 반장에게 그의 뺨을 세 대 때리라고 지시했고 반장은 주저없이 뺨을 내리쳤다. 억울함 때문에 더 흐느끼는 그를 보며 담임교사는 반장에게 더 세게 내리치라고 지시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마다 이날을 떠올리곤 한다”며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민족끼리도 시골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당하고 뺨을 맞는데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의 삶은 어떻겠느냐”고 했다.
또 한 번의 사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대학 2학년 때였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친구가 죽은 것을 보며 분노하던 그는 개신교의 목사들이 그런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으려던 무렵, 성남 주민교회의 이해학 목사를 만났고 이 만남은 김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가 성남 지역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도 이 목사의 영향이 컸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든든한 후원자지만 가족들에겐 자칫 무책임한 가장일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이 아빠를 이해하고 비슷한 길을 가려고 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2001년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김 대표의 두 딸은 크레파스 등에 쓰인 ‘살색’ 표기가 인종차별을 조장한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이에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기술표준원에 개정권고 판결을 내렸고 기술표준원은 2002년 살색을 연주황으로 개정고시했다.
그러나 두 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주황색에 대해서도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크레파스 색깔의 이름이 너무 어려운 것 역시 또다른 차별”이라고 주장해 결국 2005년 살구색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결같은 온정 숱한 기적 낳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결같은 그의 온정은 숱한 기적을 낳았다. 1996년 어느 추운 겨울, 길가에서 떨고 있는 스리랑카 청년 2명에게 밥을 먹여주고 일자리를 구해준 것을 인연으로 코끼리를 선물받은 것도 그중 하나다. 우연히 도운 외국인 노동자의 삼촌이 대통령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16년 전 그가 도와준 스리랑카 노동자의 작은 아버지는 당시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이었고 훗날 국무총리를 거쳐 지금의 대통령이 됐다.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의원 시절 조카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김 대표와의 인연을 이어오다 대통령이 되어 우정과 감사의 선물로 코끼리 한 쌍을 선물한 것이다. 덕분에 가임능력을 가진 암컷이 없어 국내 동물원에서 사라질 뻔한 코끼리의 명맥을 잇게 됐다.
정부의 지원 없이 후원금만으로 2004년 외국인노동자 전용 의원을 설립하고 외국인 쉼터와 지역아동센터 등을 운영하는 것도 그가 일군 기적 중의 하나다. 그는 “불법체류자 신분 탓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이 절실했지만 ‘의사도 아닌 목사가 어떻게 병원을 만들려고 하느냐’며 다들 말렸다. 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도 의료진을 확보하고 기자재도 마련해 8년간 30만명 이상의 생명을 살렸다”고 말했다.
외국인 쉼터에서는 하루 700여명분의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며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잠자리가 제공된다. 그는 “이 많은 사업들이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경영방법’이라고 설명한다”며 “성경 말씀처럼 거저 주었더니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몰려드니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면서 독지가들의 도움이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인 지구촌학교를 열어 국내 최초로 초등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150만명에 달하는 지금 이제는 그들을 배려하는 것을 넘어 동반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김해성 목사는?
▲1961년 전북 익산 출생 ▲1983년 한신대 신학과 졸업 ▲1994년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설립 ▲2000년 (사)지구촌사랑나눔 설립 ▲2007년 10월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2011년 3월 지구촌학교 임시개교 ▲2011년 11월 지구촌학교 국내 최초 초등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정식인가
▲1961년 전북 익산 출생 ▲1983년 한신대 신학과 졸업 ▲1994년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설립 ▲2000년 (사)지구촌사랑나눔 설립 ▲2007년 10월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2011년 3월 지구촌학교 임시개교 ▲2011년 11월 지구촌학교 국내 최초 초등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정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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