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 표현된 스코틀랜드 원시림 실감나
처음부터 끝까지 공주모녀의 모험담 전개
미남왕자와 로맨스 없이도 성공적으로 풀어

원시림이 우거진 8∼12세기 즈음의 스코틀랜드. 조그만 왕국의 공주 메리다는 우아하고 다소곳한 아가씨와는 거리가 멀다. 당차고 씩씩하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정중앙에 명중시키는 것.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 수준이다. 무섭지도 않은지 아찔한 절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른다. 복슬복슬한 빨간 머리는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 풀어헤쳐져 있다.
이런 메리다에게 어머니인 왕비는 답답함 그 자체다. 어머니에 따르면, 공주는 일찍 일어나고 깨끗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며 언성을 높여서도 안 된다. 어머니는 메리다를 다소곳한 전형적인 공주로 키우는 데 열중한다. 메리다는 “공주인 저는 모범을 보여야 해요.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해요. 각본대로 왕비가 되겠죠”라며 “공주가 아니었음 싶을 때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27일 개봉하는 3D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이처럼 천양지차인 두 사람이 우여곡절을 거쳐 서로 이해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디즈니·픽사의 신작인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디즈니·픽사의 애니 중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멋진 왕자님이 등장하지 않는 공주 이야기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개척해야 한다는 진취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여성과 어린이의 활약만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남성 캐릭터들은 변방에 머물고 오히려 사건을 꼬이게 한다. 변한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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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3D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중세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씩씩한 공주 메리다가 곰으로 변한 엄마를 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
사건은 천방지축인 메리다가 원치 않는 결혼으로 떠밀리면서 시작된다. 던브로 왕국의 메리다는 동맹 부족장들의 아들과 결혼해야 한다. 세 부족이 성을 방문하고 일종의 소개팅 자리가 열린다. 신랑감 후보들은 허풍스러운 힘자랑을 늘어놓는다.
한숨 쉬던 메리다는 “쏠 화살을 고르듯 신랑감도 제가 골라요”라며 활을 들고 과녁에 명중시킨다. 왕비는 메리다를 질책한다. 둘의 말다툼은 지구촌 공통인지 일일드라마 속 모녀들의 그것과 똑같다. 메리다는 항변한다.
“(엄마는) 내가 뭘 바라는지 관심없잖아. 그림자처럼 붙어서 이거 해 이거 해. 이건 내 인생이야. 결혼 안 해.”
왕비의 심정은 다르다. “엄마도 결혼 전에는 억울했어. 공평하지 않다는 건 알아. 이러는 건 다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숲으로 달아난 메리다는 도깨비불을 따라가다 수상한 마녀를 만난다. 그에게서 엄마를 바꿀 수 있다는 묘약을 구해온다. 그러나 약을 먹은 엄마는 거대한 곰이 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변한 줄 모르는 왕은 곰을 잡겠다며 씩씩댄다.
‘메리다와…’는 곰으로 변한 왕비가 서서히 딸을 이해하고 가족 간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능숙한 솜씨로 빚어낸다. 곰이 된 엄마에게 “내 잘못이 아니야. 쭈그렁 마녀의 짓이래두”라고 철없이 굴던 메리다도 한 단계 성장한다. 메리다의 동생인 세 쌍둥이 왕자들은 극에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활기를 불어넣는다. 꾀돌이·사고뭉치에 먹보인 세 쌍둥이는 엄마를 구하는 데 공을 세운다. 제작진은 메리다를 돕는 미남 왕자처럼 자극적인 요소를 극에 추가할 수 있었음에도 우직하게 모녀의 모험담에 집중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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