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왕으로 변신한 뵨사마요? 나도 그게 가장 궁금했어요.”
월드스타 이병헌이 첫 사극에 도전했다. 13일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을 통해서다. 그의 사극 첫 도전이자, 2년 만의 한국영화 복귀작이란 말에 개봉 전부터 국내외 영화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지난 주말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나 인터뷰했다. 10일 할리우드 영화 ‘레드 2’ 촬영 때문에 캐나다 출국이 예정돼 있었던 터라 조금은 무리를 해가면서도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와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한류스타이자 월드스타가 ‘조선의 왕’으로 분했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기대감을 자아내는 영화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나도 그랬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나라 콘텐츠는 이제 아시아 전역을 넘어 유럽, 중동, 미국까지 팔려나가잖아요. ‘광해’속 매화틀(조선시대 왕이 쓰던 이동식 변기) 장면도 우리나라 관객들이 놀라면서 보실 텐데, 해외 관객들은 또 어떻겠어요. ‘아 저랬어? 우와’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많고, 코믹적인 요소들도 있어서 해외팬들도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실 것 같아요.”
이병헌의 출연만으로도 해외배급에 청신호가 켜졌다. ‘광해’는 미국 12개 극장 개봉을 확정짓는가 하면, 1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라크마·LACMA)에서 열리는 필름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이병헌 역시 해외 촬영 중 잠시 짬을 내 라크마 시사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데뷔 20년을 넘긴 그가 첫 사극에 도적했다는 점이 의아할 정도로 사극 분장이나 대사톤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왜 이제야 사극에 도전했느냐”는 것이다.
“저 아직 못 해본 연기 많아요. 직업군으로 따져도 해본 역할보다 안 해본 역할이 훨씬 많을 걸요?(웃음) ‘광해’는 첫 사극이고, 코미디라 긴장을 좀 하긴 했죠. 제 연기를 보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에는 ‘그래 좋다, 나도 좀 고생했어’라고 토닥여주고 싶었어요. 일단 시나리오가 무척 맘에 들었고, 연출 배우 카메라 조명 미술 소품 등 다 잘 어우러져서 좋은 작품이 나왔구나 생각했고요.”
극중 이병헌은 역사에서 ‘폭군’으로 낙인 찍혀야 했던 비운의 왕 광해와 15일간 그를 대신해 살아야 했던 가상의 왕 하선, 1인 2역을 맡아 진정성이 묻어난 연기를 펼쳤다. 근엄한 왕과 익살스러운 천민을 오가는 역할이 배우로서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을 터였다.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많이 고민한 게 바로 ‘코미디의 수위’였어요. 너무 과하면 유치해 보이고, 또 너무 약하면 쓴웃음이 나올 수 있거든요. 제가 그 적정선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고민됐죠.”
오랜만의 코미디 연기는 그를 잠시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꽤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병헌은 오랜만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어제 VIP시사회를 마치고 한 후배 녀석이 ‘전 형의 옛날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오늘 그 모습을 보게 돼 감격스러웠어요’라고 얘기해주더라고요. 눈물이 고일 정도로 진심이 느껴졌고, 내가 한 사람의 향수(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사람이 됐다는 게 기분이 묘했죠. 제 주변 사람들도 하선의 모습을 보고 ‘그냥 네 모습’이라고 말해줘요.(웃음) 하선이 저와는 동 떨어진 인물이라면 몰랐겠지만, 평상시 제 모습과 똑같기 때문에 애드리브까지 넣어가며 여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죠.”
이병헌은 마지막으로 “역사가 기록해놓은 광해와 상상력을 통해 구현해낸 하선의 모습을 합친 게 진짜 광해라고 믿고 있다”면서 “영화촬영 때문에 한동안 해외에 머물게 될 것 같다. 관객들이 ‘광해’를 보시고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안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3일 국내 개봉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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