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위 위원장 같은 이는 “대기업은 생리적으로 탐욕의 끝이 없다”고 진단한다. 탐욕 억제의 처방으로 정부의 규제를 들먹인다. 마치 성폭력범에게 성욕 억제 약물을 투여하자는 논리와 비슷하다. 재벌 스스로 탐욕을 억누르지 아니하면 ‘재벌 거세론’이 불거질 것임은 자명하다.
탐욕은 만악(萬惡)의 근원이자 패망의 지름길이다. 제국을 탐하는 자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결국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피흘리며 사라졌다. 칭기즈칸 몽골은 800년이 지난 지금 사막과 초원만 남았고, 페르시안 제국의 영광은 낡은 역사서에 몇 줄 나오는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자들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석가, 공자, 예수 같은 이들은 어떤가. 생전에 돈 한 푼, 땅 한 평 없었지만 그들은 200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수십억 인류의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우리 재벌가 회장들이 세상을 뜬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1년이라도 기억해 줄까? 가진 돈과 권력의 크기에 비해 기억의 편린은 너무나 초라할 것이다.
미국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은 자고 일어나 보니 자본가에서 자선가가 됐다. 돈과 권력은 움켜쥐고 향유하면 독이 된다는 원리를 일찍 깨달은 듯하다. 그들은 서양판 도인이다. 어째서? 도를 닦는 데 최대 장애물로 치부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일거에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100% 한국’을 지향할 때다. 정치권의 대선전략이 아니라 국민적 바람이다. 가진 자가 그 선두에 서줘야 한다. 교회에서 십일조 내듯 대기업이 수익의 일정분을 꾸준히 사회에 던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달갑지 않은 경제민주화란 말도, 가진 자에 대한 원망도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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