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게만 느껴졌던 그가 대중의 곁으로 다가왔다. 스크린으로 관객과 주로 마주했던 배우 장동건이 12년 만에 안방극장 문을 두드렸다. 그간의 진중한 모습에서 무게를 덜어낸 것도 모자라 코믹연기까지 꺼내보였다.
장동건은 SBS ‘신사의 품격(극본 김은숙·연출 신우철·이하 신품)’에서 까칠하고 자유분방한 건축사무소 소장 김도진을 연기했다. 40대 중년의 사랑을 솔직하게, 때론 대담하게 그려내면서 남녀 시청자의 고른 공감을 샀다.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는 범접하기 힘들었던 장동건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허물었다.
◆ “식상함 털어내고 싶었다”
“기존 작품들이 너무 무거웠고, 비극을 주로 연기하다보니 제 모습이 식상했어요. 수년 전부터 스스로 작업이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죠. 그러던 차에 만난 작품이 바로 ‘신품’이었어요. 무거움을 털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했는데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룬 것 같아요.”
오랜 스크린 나들이를 마치고 안방으로 돌아온 장동건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장동건은 ‘신품’을 통해 오랜만에 멜로를 선보였다. “‘이브의 모든 것(2000)’? 멜로물이 기억 안날 정도”라는 장동건은 40대 중년의 사랑을 그린 ‘신품’을 ‘특별하다’고 표현했다.
“‘신품’은 40대의 사랑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40대가 하는 사랑은 성숙하고 깊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질투하고 유치한 감정은 여는 20~30대와 다르지 않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특별한 드라마였죠.”

◆ ‘로코퀸’ 김하늘에 의지했다
오랜만의 로맨틱 코미디가 낯설었음직하다. 장동건의 적응을 도왔던 건 극중 파트너이자 ‘로코퀸’ 수식어가 익숙한 김하늘이었다.
“김하늘씨가 이런 장르에 일가견이 있어 초반에 의지를 많이 했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생소한 장르였고, 드라마는 오랜만에 촬영하는 거라 처음에 긴장했는데 김하늘씨가 연기에 대한 모니터부터 수위에 대한 조언을 해줘 힘이 많이 됐어요.”
도진-이수 커플의 달달하면서도 시크한 ‘밀당’과 닭살 애정행각은 20대 못지않은 연애의 묘미를 보여줬다. 유치할 수 있는 도진-이수의 애정표현은 사랑스럽게 화면에 담겼다.
“보는 사람이 민망하다면 하는 사람은 얼마나 민망하겠어요.(웃음) 네 커플이 각각 담당하는 연애의 단면들이 있는데 도진-이수 커플이 담당한 몫은 유치함과 오글거림이었기에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수를 향한 플래시몹 프러포즈는 오글거리면서도 예쁜 마무리 아니었나요?”
◆ “현빈, 군대서 전화…콜린 아빠 맞냐고”
장동건은 ‘신품’을 통해 처음 코믹연기에 도전했다. 진지하고 우수에 찬 장동건의 이미지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 또한 “걱정스러웠다”고 코믹연기에 대한 초반 부담감을 털어놨다.
“처음엔 코믹연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판단 못해 주저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제 코믹연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떠나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 앞에서 터지니 점점 욕심이 생겼어요. 나중엔 감독님이 누르는 상황까지 갔죠.”
코믹연기에 도움을 준 이는 김은숙-신우철 콤비의 전작 ‘시크릿가든’의 주인공 현빈이다. 장동건은 “현빈이 휴가 나왔을 때 고충을 토로했더니 하다보면 욕심이 날 거라더라. 수위에 대해서도 걱정 말고 하라고 했다”고 현빈의 도움을 전했다.
현빈의 조언대로 코믹본능을 발산한 장동건. 이에 대한 현빈의 반응은 어땠을까.
“방송 중일 때 현빈이 휴가를 나왔어요. 현빈이 ‘군대 내무반에서 채널 고정시켜 놨다’고 하더군요. 군대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응원해 줬어요. 한번은 현빈이 부대에서 전화하더니 묻더라고요. 콜린(이종현 분)이 진짜 아들이냐고요. 내무반에서 진짜 궁금해 한다고 알아봐 달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직접 드라마로 확인하라고 답해줬어요.(웃음)”

◆ “두 돌도 안 됐는데 알파벳을…” 아들 자랑
‘배우’ 장동건이 아닌 ‘가장’ 장동건의 모습도 대중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장동건은 아내 고소영과 아들 준혁군의 이야기에 연신 미소를 보였다.
“소영씨랑 드라마를 함께 본 적은 거의 없어요. 아내 입장에서는 멜로신을 비롯해 보기 불편한 장면도 많았을 텐데 끝나고 ‘수고했다’고 말해줘서 고마웠어요. 한창 아기 키울 때에도 영화 ‘마이웨이’ 촬영하느라 도와주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잘해야죠.”
장동건은 아들의 외모에 대해 “여태껏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조금씩 자신을 닮아간다”며 “점점 느끼해지는 것 같다. 쌍꺼풀도 두꺼워지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아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자랑을 늘어놨다.
“아들이 남달라요. 총명해요. 아직 두 돌이 안 됐는데 알파벳을 뗐단 말이죠. 뭔가 있어요.(웃음)”
가족 자랑에 여념이 없는 그의 모습에서 톱배우의 포스가 아닌 여느 보통 가장의 인간미가 전해졌다.
데뷔 20년차 배우의 기복 없는 연기 인생을 이끈 것은 연기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 그리고 겸손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향하는 ‘품격 있는’ 배우의 모습 또한 연기 욕심으로 점철된다.
“배우에게 ‘품격’이란 연기력이겠죠. 배우의 자신감은 인기도, 개런티도 아닌 연기력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요. 연기 잘하는 배우에겐 함부로 할 수 없잖아요. 개런티와 인기는 다른 지점에서 오는 것일 수 있지만 연기력 없는 배우에게 자신감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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