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이 1945년 광복 후 국내에서 속간(續刊)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1919년 8월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인사들이 창간한 독립신문이 광복 후 국내에서도 발행됐는지는 그동안 알려진 게 없다. 서재필이 1896년 창간한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과는 다른 매체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 산하 연구기관인 백범학술원은 임시정부 인사들이 광복 후 국내에서 발행한 독립신문 속간을 수집·영인해 ‘백범학술원자료총서’ 제1집 공식 출간일(15일)에 앞서 10일 총서 제1집을 공개했다.
백범학술원은 “임시정부 인사들이 환국 후 국내에서 신문을 발행했던 사실은 물론이고 국내 발행 독립신문의 존재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서 “국내판 독립신문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백범학술원자료총서’ 제1집에는 속간 1호(1946년 12월27일)부터 제388호(1949년 3월31일)까지의 신문이 실려 있다. 속간 1호에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이시영(국무위원)·조소앙(외무부장)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속간 축하 휘호가 실려 있다. 김구 주석은 ‘발양정기(發揚正氣·바른 기운을 발양하다)’라고 축하의 글을 썼다. 제호는 ‘독립신문’이지만 상하이 독립신문과 구분하기 위해 ‘(환국속간) 독립신문’이란 별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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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독립신문’ 중문판 창간호 |
백범학술원은 “임시정부 인사들이 광복 후 국내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의 실물이 최초로 수집·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광복 후 임시정부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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