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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문어맨·씨름맨·두더지걸…살아있는 연극 ‘뜨거운 바다’에 뛰어들다

입력 : 2012-08-09 10:35:08 수정 : 2012-08-09 10: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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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뜨거운 바다’

츠카 코헤이 작, 고선웅 연출의 연극 <뜨거운 바다>

“이 사건은, 한 발을 내딛지 못하는! 한 단계 낮은 어리석은 우리 형사들이, 한 단계 위, 즉 한 발을 내딛어 여자의 목을 조를 수 있었던 용의자를 수사한다. 누가 들으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얘기라고 할 거야.”

지난 4일, 한국공연예술센터 테마별공연예술시리즈이자 재일교포 2세 故츠카 코헤이(김봉웅)의 타계 2주기를 맞아 기획된 연극 ‘뜨거운 바다’의 막이 올랐다. ‘일본현대연극은 ‘츠카 이전’과 ‘츠카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연극인의 작품이다. 결코 평범한 수사극도 아니고 이해가 용이한 연극도 아니다. 오히려 황당한 연극이란 수식어가 적합해 보인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실한 연극’이란 점이다.

연극 ‘뜨거운 바다’의 기본 줄거리는 아타미 해변에서 매춘부가 살해당한 사건을 취조하기 위해 모인 세 명의 형사와 한 명의 용의자 이야기다. 취조 과정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사랑과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등이 배우들의 뜨거운 에너지와 함께 전달된다는 점이 특징.

츠카 코헤이 작, 고선웅 연출의 연극 <뜨거운 바다>

등장인물들은 사는 기준과,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 멍 때리고 나이만 먹은 채 흐늘흐늘 썩어 문드러진 문어 같은 기무라 부장형사(이명행), 쫙 찢어진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채 겉은 화려해보이지만, 땅 위로 나오려 하면 이 놈이 퍽, 저 놈이 퍽 하고 때리는 통에 어두운 구덩이에서 눈 감고 살아가는 미즈노 여형사(이경미)가 그러했다.

특기는 ‘러시안 수사법’으로 운 밖에 믿지 않는 수사관 구마다 형사(김동원)는 또 어떠한가. 아무리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외치며 ‘너 같은 놈들한테는 절대로 바다를 보여줄 수 없어’라고 딱 잘라 말하는 인물이다. 서로 샅바를 잡고 쓰러뜨리는 씨름처럼 맨 몸으로 부딪치며 살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처박히게 만드는 미끄럼틀 인생을 살아온 용의자 오야마(마광현)도 예사롭지 않다.

기가 막힌 연극이다. 시종 허를 찌르게 하는 기무라식 수사법은 용의자의 동기를 폼나게 창조해주고 수사의 레크리에이션 타임엔 용의자가 궁금해하지도 않는 자신의 연애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식이다. 그것도 수박에 스티커를 딱 붙여서 출하하듯 용의자의 유죄를 길러내서 입증시킨다. 결국 용의자가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는다. 놀라운 것은 살인 사건을 저지른 오야마의 첫사랑 이야기와 부장과 여형사의 이야기가 섞여 들여가 하나로 모아진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츠카 코헤이 작, 고선웅 연출의 연극 <뜨거운 바다>

끝내는 이해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어 보이는 황당무계한 대사들이 아니었음은 극 후반에 가서 드러난다. 딱 한 발을 내딛지 못했던 연인은 뜨거웠던 봄 날, 남자와 여자의 10년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하지만 딱 한 발을 내딛은 연인은 살인 사건에 다다르게 된다. 결혼할 수 없었던 운명의 여자를 위해 매일 기도할 수 밖에 없는 남자만이 고독 속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반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젊음의 패기가 넘친 남자는 마음이나 몸으로 하나가 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기무라가 하얀 꽃다발로 오야마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후려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마에 붙은 콘돔으로 웃다가 서먹서먹해져서 여관을 나온 후 상처받은 연인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극 안에는 사랑과 삶의 방식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가 넘쳐난다. 때론 뮤지컬처럼, 때론 만화처럼 때론 코미디처럼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그러던 중 ‘형사가 범인보다 겸손해야한다는 원칙’이 아이러니하게 지켜지고 있음에 박수와 함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츠카 코헤이 작, 고선웅 연출의 연극 <뜨거운 바다>

한번 안으면 뼈가 부러질 때까지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100만 번이라도 말하는 범인의 사랑과 ‘사랑은 함께 하늘을 가지려하는 강한 의지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외치는 형사의 사랑이 직교한다. 특히 형사 기무라는 애인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시집가게 놔둔다. 그것도 검은 턱시도의 제비꼬리를 털면서 말이다.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 여자가 아닌 몇 천 몇 만의 외로운 용의자와의 사랑을 겸손하게 기다리는 기무라이기에 그의 외로운 휘바람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배우가 연극 속에서 이 모든 걸 형상화시키는 지점 거기까지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좌지우지 할 듯 하다. 유연하고 넒은 마음으로 안아줄 것인가. 화를 내며 토라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관객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후반 20분 가량의 몰입도는 정말 끝내준다. 배우 이명행과 이경미의 아우라가 압권이다. 연극 ‘뜨거운 바다’를 놓칠 수 없는 이유이다. 8월 1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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