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연출가 권호성 ©정다훈 기자 |
■ “‘윤동주, 달을 쏘다’는 시적 판타지와 다이나믹이 공존하는 작품”
초등학교 시절, 사촌누나가 놔두고 간 윤동주 시집이 마냥 좋았다고 밝힌 권호성 연출가(극단 모시는 사람들 상임연출, (주)쇼앤라이프 대표)는 “윤동주 시가 가진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제대로 구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 시인의 일대기이지만 시적 판타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공을 들였어요. 시를 어떻게 형상화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한거죠. 읊조리듯 보여주는 시, 격정에 찬 시, 회한에 찬 시의 리듬을 하나 하나 살려내려고 해요. 특히, 무대 미술과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나요. 감각적인 영상과 조명 등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의 기술적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릴 예정입니다.”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은 춤과 노래를 기본으로 극적인 이야기를 엮어가는 종합무대예술이다. 이에 대해 권 연출은 “ 가무극이 뭐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론 요즘 유행하는 뮤지컬과 크게 다르다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소재적 시점을 근대로 맞춘 게 차이점인 것 같내요.” 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윤동주는 일제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평소에도 별 말이 없었던 윤동주는 큰 사건 없이 담담하게 살다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연출이 준비한 극적 장치는 뭘까.
“ 윤동주는 다른 사람이 열마디 할 때 한마디 할 정도로 조용한 인물이에요.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성격의 사람이 한마디(시를 쓰는 것) 하는 게 얼마나 큰 외침이겠어요. 그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분석했어요. 담담히 시를 쓰고 사색하는 청년 윤동주를 흔드는 주변의 처절한 역사적 상황에 주목한거죠. 윤동주는 자신은 흔들리고 싶지 않았지만 파도 같은 주변으로 인해 흔들리는 인물이에요. 예술단의 군무와 합창이 큰 힘을 발휘할 듯 합니다.
뮤지컬 전개상 긴장감을 주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가상의 여인(이선화)을 내세워 시인에게 용기를 돋워 주고 고무시켜주는 등 극적 상상력으로 서사를 채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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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배우 박영수, 김형기, 이시후, 김백현, 김혜원 |
■ 윤동주의 시를 ‘윤동주’가 들려준다.
윤동주의 시에 노래를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권호성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윤동주 시 자체에 운율이 있기 때문에 ‘시’를 노래하지 않고 시를 그대로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음”을 밝혔다.
“21곡의 노래가 나오지만 윤동주의 시가 노래로 불리지는 않아요. 고유한 예술성을 지닌 ‘시’가 가지고 있는 음률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에요. 오히려 윤동주의 시를 극중 인물 윤동주가 들려주는 게 특징입니다. 윤동주의 입을 통해 나온 윤동주의 시가 관객과 만날 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권 연출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익숙한 음악으로 감동을 안겨줬듯 ‘윤동주, 달을 쏘다’는 친숙한 시로 감동을 전달 할 것‘이라고 했다.
“문학도를 꿈꾸는 청년이라면 한번 쯤 외우고 다녔을 윤동주의 시가 활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되고, 연기되어집니다.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가 무대 위에서 선율과 움직임으로 펼쳐진다고 이해하면 될 듯 해요. 시가 읽혀진 후 관념의 잔상이 남듯 각 장면의 동작들을 연상케 하도록 안무가 구성 되었거든요. 이렇게 되면 감동은 배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1막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서시’가 2막에서는 ‘별 헤는 밤’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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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
■ 무대의 차가운 ‘달’이 따뜻한 ‘별’이 되어 관객의 마음에서 폭발한다
‘달을 쏘다’라는 제목은 동명의 산문에서 따왔다. 이는 윤동주의 작품에 ‘달’이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달은 윤동주가 시를 쓰거나 사색하는 밤에 언제나 함께 하며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조선을 강압하던 일제의 무게로 해석 할 수도 있다.
“‘달’의 상징적 의미는 2가지로 볼 수 있어요. ‘달 때문에 가려졌던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별빛을 맞춘다’는 의미, ‘달빛이 강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는 의미 이렇게 2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극 중 판타지한 최고의 무대를 선사할 ‘달’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몸집을 키워가다가 윤동주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윤동주의 내적 갈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이용되는 것이다.
“‘달’은 시대가 가리고 있는 외압의 의미도 있지만 윤동주의 자의식과 부끄러움을 나타내기도 해요. 그래서 달을 쏘고 난 뒤에 별빛 속에 윤동주가 서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됩니다. 그걸 뚫고 이 시대 윤동주로 서겠다는 의미인 거죠.”
그렇다면 ‘별의 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에게 왜 ‘달’의 이미지를 입혔을까?
“하늘에 달이 밝으면 별이 보이지 않잖아요. 별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달’의 이미지를 끌어온 것이죠. 달을 쏜다. 무찌른다. 맞춘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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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배우 박영수 |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도,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지만,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 윤동주 역에는 서울예술단의 배우 박영수가 캐스팅 되었다.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연예인 캐스팅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사실, 윤동주 역을 소화할 연예인이 없었어요. 음악 실력이 뛰어난 연예인이 있다 해도 연기까지 가능한 연예인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윤동주 시를 감동적으로 전달할 배우를 몇 달이 걸려 찾아냈어요. 결국 김영수 단원이 가장 적합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
박영수는 맑은 느낌의 순수한 청년이자 고뇌의 찬 지식인 윤동주의 창백한 인텔리적 인상과 너무도 흡사한 배우이다. ‘바람의 나라’ ‘청 이야기’ 등 이전 작품에서 주조연급의 단계를 밟으며 노력파 배우로 내실을 다져왔다.
“시인 윤동주의 정서 및 깊이를 잘 이해 할 수 있는 친구에요. 정말 영혼이 맑은 배우라 잘 해주고 있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로 수감되어 29세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나이와도 똑같구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도 청년의 느낌이 나지 않는데, 정확히 그 나이인 점도 마음에 듭니다. ”
권씨는 윤동주의 시, 윤동주의 시가 살아나는 가무극 ‘달을 쏘다’가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절대 고루하지 않아요. 지루하지도 않구요. 파격적이고 도전적으로 극적 긴장감 및 윤동주 시의 서정성에 깔려있는 비장미를 담아낼 것입니다. ”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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