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주미의 살람, 중동] <2> 파키스탄 칼라시밸리

관련이슈 강주미의 살람, 중동

입력 : 2012-07-26 22:07:26 수정 : 2012-07-26 22:07:26

인쇄 메일 url 공유 - +

나는 새조차도 찾기 힘든 오지
여인들 화려한 장신구·옷 인상적
때마침 봄 축제… 종일 춤추고 노래
칼라시밸리는 파키스탄의 북서쪽 협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종교색이 짙은 이슬람국가에서 유일하게 비무슬림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곳이다. 나는 이곳에 가면 히잡도 벗을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고, 아침을 알라의 소리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곳도 훈자에서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된 곳이지, 나에게 그 어떤 루트도 정해진 건 없었다. 발이 닿는 곳이 길이고, 마음이 끌리는 곳이 나의 여행 루트다.

파키스탄 칼라시밸리 가는 길에서 본 산두르패스의 전경. 해발 3810m의 고도에 위치한 산두르패스는 눈이 녹지 않으면 통과하기 힘든 곳이다.
칼라시밸리는 길이 허락해줘야만 갈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협곡 속에 있는 작은 마을로 가는 길이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훈자 방면에서 출발한다면 길이 열려야만 갈 수 있다. 산두르패스를 지나야 하는데 눈이 녹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발 3810m의 고도에 위치한 산두르패스는 1년 중 3∼4개월만 이곳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

나는 훈자 마을에서 내려와 길기트 마을에서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표를 끊어놓고도 ‘오늘은 안 된다, 내일 다시 와라’는 말을 며칠간 반복해서 들었다. 칼라시밸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결정한 그날 밤이었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 도둑이 들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도미토리룸에서 난 혼자 자고 있었고, 도둑은 나를 깨우지 않고 많은 것들을 가져갔다. 내가 깨지 않은 것에 모두들 감사했고, 나는 카메라만 유일하게 남기고 간 도둑에게 감사했다. 이어폰 하나까지 모든 전자제품과 현금 등을 가지고 가면서도 카메라는 남기고 간 걸 보면 여행을 더 하라는 의미일 게다. 그렇게 하루를 더 지내고 나니 칼라시밸리 길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칼라시밸리 가는 지프의 운전사가 강을 보더니 갑자기 차에서 내려 낚시를 하고 있다. 그는 날아가는 새를 보면 차를 세우고 장총을 들고 나가 사냥하기도 했다.
표를 다시 바꿔서 바셉트행 낫코(NATCO)버스를 탄다. 파키스탄에서 제일 좋은 버스이며 전 노선 학생할인까지 해주는 버스다. 이 버스를 제외하곤 일반버스는 노선이 제한적이다. 나는 길기트에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지프를 탄다. 지프는 작은 트럭으로, 짐을 싣는 뒤칸에 사람들을 잔뜩 실어야만 출발한다. 다행히 그 다음날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지프가 있었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여서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의 운전사는 강이 나오면 낚시를 하고, 새가 날아가면 장총을 가지고 나가 수렵생활까지 즐기면서 차를 중간중간 멈추곤 했다. 나는 그 덕분에 산두르패스의 기막힌 경치를 감상하며 때론 걷고 때론 차를 밀기도 하면서 갔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칼라쉬벨리 사람들은 친절하다. 여인이 웃는 모습에서 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산두르패스는 큰 강이 흐르고 산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자연을 지니고 있다. 중간에 운전사랑 친해지기도 했고, 유일한 여자라는 특권으로 앞좌석으로 옮겨 의자다운 곳에 앉아서 갔다. 처음에는 치트랄까지 간다던 지프는 산두르패스를 넘어 도착한 마을 라스푸르에서 멈추더니, 그곳이 자기네 집이라서 더 이상 안 간단다. 다음 지프를 기다리고 또 한 번을 갈아타고 겨우 도착한 치트랄은 여행자들이 많이 머물러 게스트하우스도 좋고, 인터넷이 되는 곳도 있고, 심지어는 박물관도 있었다.

치트랄에서는 칼라시밸리를 가기 위한 퍼밋(허가증)을 받아야만 한다. 경찰서에서 받는데 돈은 안 들지만 절차가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 파키스탄에서는 여권 검사와 퍼밋 검사를 수시로 하기에 잘 챙겨야 한다. 나는 퍼밋을 받고 시간이 남아 오랜만에 박물관에 들르기로 했다. 이슬람권에서는 금요일이 휴일인데, 이곳은 일요일임에도 문을 안 열었다. 그곳 앞에서 어느 파키스탄인을 만났다. 그는 아들과 함께 왔고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가 “닫혀 있는 박물관에 들어 갈 수 있게 해주겠다”며 열쇠 가진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길래 우린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렸다.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는 이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박물관을 들어서니 작은 공간에 돌들을 쌓아 놓은 모습이 보였다. 간다라미술의 근원지가 파키스탄 탁실라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에 불상이 있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들은 유리관에 잘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탁자 위에 올려져 있을 뿐이다.

함께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칼라쉬벨리 사람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춤추고 노래하며 봄을 맞이하는 축제는 산 속에 사는 이들의 중요한 의식이다.
치트랄에서 2시간가량을 가면 드디어 내가 가고자 했던 칼라시밸리가 나온다. 2시간이라는 건 물리적인 시간일 뿐이지, 실제로는 반나절을 길에서 허비한 것처럼 느껴진다. 꼭꼭 숨겨놓은 그 마을은 도착하기 전까지는 쉽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길이 험난한 건 이제 견딜 만하지만 떨어지는 돌들은 계속 맞아야만 한다. 재미로 가져갔던 헬멧과 고글을 착용하고 가니 그나마 안전하다. 절벽의 비틀거리는 길에서 굴러떨어지는 돌들을 헤쳐나가니 드디어 칼라시밸리에 도착했다.

칼라시밸리에 들어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존재할까?’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빈민가처럼,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높이 나는 새조차도 이 마을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고 나서 보이는 것은 화려한 옷들과 장신구들로 치장한 여인네들의 모습이다. 보통의 파키스탄 여자들과는 달리 체구가 큰 편이다. 이슬람을 종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점도 그렇고, 이들만의 문화와 풍습은 너무 이질적이다. 마치 파키스탄 안에 존재하는 작은 다른 나라 같다. 내가 이렇게 느끼도록 부추기는 것은 칼라시밸리 사람들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의 후손이라는 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여행하는 데는 라면수프 같이 맛깔나게 해준다.

때마침 내가 도착한 시기는 봄맞이 축제기간이었다. 그래서 외국 관광객보다는 파키스탄 현지인 관광객이 많이 붐볐다. 실제로는 아주 소박한 그들만의 축제였지만 파키스탄 방송국에서도 촬영할 만큼 유명한 축제다. 치트랄에서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곳에 와서 축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잘 가던 식당 주인아저씨를 만나니 매우 반가웠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봄을 맞이하는 이 축제는 산 속에 사는 이들의 중요한 의식이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과 비슷하다. 나지막한 노랫소리와 북소리는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그에 맞춰 춤을 추는 여성들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높은 곳에 멈춰선다. 점심시간이란다. 다들 소풍 나온 사람처럼 도시락을 싸온 이들이 가족 단위로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이방인인 나는 어디든 낄 수 있지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가면 맛있는 음식들을 서로 나눠주지만 나는 언제나 여행자일 뿐이다.

칼라시밸리 사람들이 만들어 준 음식을 먹고 그들과 같이 쉰다. 쉴 새 없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온다. 외국 관광객은 칼라시밸리 사람들을 찍고, 파키스탄 사람들은 나를 찍는다. 낯선 동양인 여자가 이슬람국가에 사는 비무슬림 사람보다 더 신기한가 보다. 나와 동행한 파키스탄 친구는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10루피씩 받으라고 솔깃한 농담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모여 둘러서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펼쳐지는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귓가에 담은 채 마을 아래로 내려온다. 카메라가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의 파키스탄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시도해 본 끝에 카메라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사진을 잃고 말았다. 그러면서 부자들이 머무는 집에 가게 되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온 가족은 겉보기에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인정에 나는 마당에서 향 좋은 차를 한 잔 하면서 쉴 수 있었다. 어디에나 빈부 격차는 존재하지만 내가 다니는 여행에서는 잘 사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티베트까지 갈 때에도 여행객들이 타는 침대칸이 아닌 티베트 사람들만 탄다는 의자칸에 앉아서 이틀을 가곤 했다.

나는 그들과 같이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삶에 잠깐이라도 스며드는 게 좋다. 그건 아주 잠깐이라 내가 본 게 이들의 한 면일 수도 있고, 이들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에서 경험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이어진 축제가 다 끝날 무렵에 나는 짐을 꾸렸다. 다시 치트랄로 돌아와 페샤와르행 표를 구입한다. 이란으로 가기 위한 길들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굳게 먹고 출발한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윤아 '청순 미모'
  • 윤아 '청순 미모'
  • 최예나 '눈부신 미모'
  •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에스파 카리나 '민낮도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