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5·16은 구국을 위한 혁명”이라고 밝혔다. 현재도 비슷한 입장인 것 같다. “박근혜에게 5·16을 묻는 건 세종에게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것을 묻는 것”이라는 홍사덕 선거대책위원장의 답변이 대신한다.
5·16, 12·12 등은 선거 때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역사적 통찰보다는 정치쟁점화하는 경향이 특징이다. 시끄럽기만 할 뿐 답도 안 나온다.
쿠데타냐 혁명이냐는 ‘정당성’의 문제다. 대개는 구체제의 무능과 부패에서 그 정당성을 찾는다. 목표가 체제 거부·타파인 만큼 상황은 초법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적 공감, 성공 여부 등에 따라 혁명과 쿠데타가 갈린다.
19세기 말 동학운동은 조선왕조에서 보면 분명 민란이다. 하지만 훗날 혁명으로 승격됐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은 러시아왕조에 반기를 든 무장 공산주의자들의 체제전복 기도였다. 성공했기에 역사는 혁명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고려 말 이성계 신진세력의 군사쿠데타도 토지개혁 등으로 민심을 얻었다. 조선왕조를 세움으로써 ‘역성(易姓)혁명’이 됐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역시 앙시앵레짐을 거부한 시민저항이다.
박정희의 5·16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무리일까. 시대적으로 이승만·장면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서 출발했다. 6개항의 혁명공약을 내놨고 제3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그 동기와 과정이 역사적 사례들과 닮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독립국가에서는 군사정변이 빈발했다. 정치학개론은 정치와 법치가 체계화되기 이전, 저발전에서 선진으로 가는 과정의 한 특징으로 보려 한다. 당대의 피해자는 하늘을 원망하고 가해자를 탓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스펙트럼을 넓게 잡으면 안목도 넓어진다. 과정론적 해석이다. 정치권이 말하는 통합·소통·융합은 ‘넓은 시야’에서 나온다.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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