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가로로 흐른 혈흔 “옮겨진 증거론 불충분” 대법원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 ‘만삭 의사 부인사망 사건’을 놓고 법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증명이 불가능한 의학적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는 볼멘소리와 “살인과 관련된 판단이므로 엄밀하고 분명한 법적 논리와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일 법의학계에 따르면 만삭 의사 부인인 박모(당시 29세)씨 시체에서 발견된 뒤통수 출혈과 눈 부위 핏자국을 살인 증거로 보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원심은 이 흔적을 남편인 의사 백모(32)씨가 박씨를 침대에서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욕조로 옮겨놓은 증거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살인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며 임산부가 갑상선 관련 질병으로 실신한 후 욕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질식사했을 가능성도 검토해보라고 판시했다.
법의학자 A씨는 “박씨 뒤통수에서 내부출혈이 5군데나 나왔다”면서 “만약 운 나쁘게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면 내부출혈은 욕조에 부딪힌 곳에 딱 하나만 생기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누군가에게 맞아서 내부 출혈이 일어났다고 보려면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사망 직전 욕조에 넘어지면서 다른 어딘가에 부딪혀 내부출혈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
박씨의 오른쪽 눈가에서 가로로 흘러내린 핏자국도 논란거리다. 국내 법의학계는 박씨가 다른 곳에서 사망한 뒤 욕조로 옮겨졌기 때문에 핏자국이 아래가 아닌 옆으로 흘러내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법원은 “사망 도중이나 직후에 머리의 위치나 자세가 달라졌을 수도 있고, 시체가 옮겨진 흔적으로 보려면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정황이나 자료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치밀하게 범행정황을 재구성하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인 셈이다.
법의학자 B씨는 “원심에서 피고측 증인으로 출석한 캐나다 토론토대학 법의학센터장 마이클 스벤 폴라넨은 논리싸움에서 국내 법의학자에게 밀렸다”면서 “국내 학자들은 박씨가 액사(목 눌려 죽임)로 사망했다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