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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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의‘이야기-드라마 혹은 미스터리’ |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는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라는 주제로 연극과 삶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질문들을 던진다. 연극, 무용, 복합, 영상을 아우르는 총 14개 공식초청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첫 문은 극단 76단의 수장이자 아방가르드의 본좌인 연출가 기국서의 강연회로 연다. ‘미친 기국서, 못난 기국서’라는 주제로 2012년 서울변방연극제와 함께 ‘실험, 그 본래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관객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연출가 기국서는 왜 작품을 멈추었고, 그가 관통하는 시대는 어디인가? 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관객이라면 7월 4일 오후 1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를 찾아가 볼 것.
2012 변방에서 이상, 그 너머를 만날 수 있다. 서울변방연극제와 무형스튜디오-구체그룹에서 런칭하는 연극과 삶을 잇는 새로운 프로그램인 ‘새연극학교’는 아티스트 추천도서를 만날 수 있는 <이동서가> 공연 후 토크 프로그램 <어디든 가는 카페> 등을 준비했다. 보는 이와 보여주는 이로 양분되지 않고, 작품의 공유자로서 이미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작품의 경향을 관객과의 대화에도 접목해 보는 시도이다. 이외 ‘2012 변방연극제’ 키포인트를 짚어본다. 무료공연 혹은 5,000원 한 장으로 볼 수 있는 저렴한 공연들이 많다. 어디든> 이동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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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패 신명의 오월 마당굿 ‘일어서는 사람들’ |
● 정치극의 새로운 가능성
개막작인 놀이패 신명의 오월 마당굿 ‘일어서는 사람들’(7. 4~7.5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은 1988년 초연되어, 1997년 개작된 작품으로 광주 5▪18의 상황을 역동적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 포스트 마당극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2012년 관객들과 다시 만나면서 현대 사회의 질곡과 과제를 조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당극은 전통극인가, 정치극인가, 아니면 컨템포러리인가. 질문을 던진다.
장지연 & 강정식 ‘늙은 코미디언의 창고’(7. 14 ~ 7. 15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현대 정치사의 그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의 운명을 그린 모노드라마다. 유쾌한 희극 전문 배우 이춘성이 젊은 시절 동명이인의 정치범으로 오인돼 고문을 받게 되면서 그의 삶은 희극에서 비극으로 전환된다. 희극과 비극, 연극과 정치, 역사와 인생의 교차점에서 삶의 플롯이 정치에 의해 완전히 뒤바뀐 이춘성의 삶을 통해 일상의 연극성을 불러낸다.
●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질문하다
자신만의 예술을 꿈꾸며 숲속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한 무용수를 찾는 전소정 작가의 ‘Three ways to Elis’(7. 8 ~7. 9 혜화동1번지)는 50년간 숲 속에 마을을 짓고 살았다는 기이한 예술가로부터 출발하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과 절대적 권위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보편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무용수 Elis를 기억하는 세 명의 진술을 통해 사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간극을 드러낸다.
개막전 특별 상영회 작품인 조희경 작가의 다큐멘터리 ‘너의 현대 나의 현대’(7. 3, 7.8 혜화동1번지)는 이제껏 현대 무용을 하고 있다고 믿어왔던 한국의 무용가가 조희경이 ‘현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의 아시아 무용가들을 만나 질문을 나누며 대답의 열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조희경은 한 인간으로서의 나와 예술가로서의 나를 이어보는 작업을 무용으로 풀어낸 ‘이야기-드라마 혹은 미스터리’도 6일과 7일 양일간 선보인다.
제니 사비지 & 제임스 타이슨의 애니메이션 써클"a circle" (7월 4일 오후 5시~10시 , 20분마다 4명씩 관람)은 관객들을 어느 국제 도시로 데려가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기계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은유적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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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량 작가의 ‘뉴홈’ |
● 기이한 연극, 움직이는 관객들
이동형 퍼포먼스 공연 2편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극단 서울괴담의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 (7. 7 ~7.8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마을버스 정류장)은 마을을 투어하면서 그 지역이 가진 이야기를 다양한 예술적 형태를 통해 새롭게 그려보는 작품. 극단 서울괴담은 '현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괴담의 형식으로 재조명하여 현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순수한 관찰자(외부자)의 시각으로 투영시키고자 한다.
이동형 취침 퍼포먼스인 차지량 작가의 ‘뉴홈’ (7.7, 7.8, 7.14 인천아트플랫폼 C동 ~버스이동 ~빈땅)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뉴홈’은 뉴타운, 뉴시티 문화 및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으로 성장하는 세대의 뉴홈(둥지)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뉴홈을 경험하고 감상한뒤 도달한 둥지는 성장하는 세대의 새로운 생존법으로 상상적 제안을 제시한다.
● 새로운 연극 그리고 미래의 연극
사카구치 교헤의 ‘움직이는 집’(7. 7 ~7. 8 오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 7. 10 (월)~7. 20 전시 문래예술공장)은 누구든 쉽게 짓고 부서지면 다시 지을 수 있는 삶의 공간, 한곳에 영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집, 자연의 에너지와 어디든 널려있는 자본주의의 부산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새로운 주거의 방식을 제안한다. 이어 거주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국가로의 제안을 제시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사카구치 교헤는 2004년에 노숙인들의 주거 형태를 담은 사진집 『0엔 하우스』를 출간한 작가이다.
샐러드 ‘미래 이야기’(7. 17~18일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는 연극과 영화, 그리고 공공예술이 결합된 로드 연극이다. 다국적 이주민 예술단체 ‘샐러드’가 한국, 일본, 태국의 삼국을 중계와 영상으로 연결하여 난민문제를 다룬다. 이주와 죽음에 관해 재조명하는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로 한국인 파독광부의 이야기에서 여수외국인보호소의 외국인이주노동자 이야기로, 그리고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으로 사망한 한 이주여성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이주민 당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그들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완성될 예정.
이현정 ‘인터뷰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 (7. 10 ~7.12 오후 6시~9시 혜화동1번지)는 작년의 인터뷰 프로젝트(“1분간의 무서운 이야기”)를 잇는 두 작품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국가 프로젝트’로 탈근대적인 개념을 공동체적 삶으로 실천하는 서울의 성미산 마을과 오사카의 아망토 마을에서의 인터뷰를 담았다. 또 하나는 자이니치 2세 및 3세와 작가가 대화하는 과정을 담은 ‘자이니치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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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극단판 + 류세이오 류의 무용 ‘공상의 뇌 2012’ |
● 잊었던 감각들을 복원하는 연극들
리슨투더시티 & 진동젤리 ‘모-래’(7. 15 한강 반포지구)는 거대한 트럭에 실려 오는 모래를 보면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모래를 보고 강의 죽음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 모래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표현해야한다는 예술가, 강은 개발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 그리고 이 장면을 트윗으로 중계하는 사람이 나온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는 현대인의 도시적 삶에 질문을 던지며 현대인들이 잊고 있었던 감각들을 되살아나게 하는 복합공연이다.
지은인 프로젝트 ‘샴 아미그달라’( 7. 19 ~20일 LIG아트홀)은 인간을 향한 반(半)인간들의 비(非)인간적 질문'당신은 인간입니까?' 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연결지점인 ‘공포’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인간과 비인간을 잇는 만남을 시도한다. 기존의 세계관, 현실을 넘어서는 ‘SF적 상상력’은 실재와 상상 사이 다른 가능성들을 통해 인간이 안고 있는 근본적 질문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할 예정.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가 함께 만드는 무용 ‘공상의 뇌 2012’ (7. 11~ 7. 12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는 장애인 혹은 장애예술가라 부르지만 그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장애인극단판과 일본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세이오 류가 함께 하는 작품. 공백과 침묵, 인간과 동물의 결합, 두뇌 중심의 활동을 무용으로 불러낸다. 사운드 아티스트 류한길&최준용&홍철기의 ‘열등한 소리들’(7. 14 닻올림)은 듣는 소리를 계층화하는 우열의 소리, 이를 피하려는 시도를 연극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동시대적 사유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최전방의 순수예술플랫폼인 ‘서울변방연극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개최된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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