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잡스가 떠난 애플이 이전의 애플과 똑같지는 않았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고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외쳤던 마술 같은 한마디 “그리고 한가지 더(and one more thing)”는 없었다. 잡스가 그때마다 선보였던 혁신적인 깜짝 제품도 없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주도했던 잡스와 달리, 그의 뒤를 이어받은 팀 쿡은 행사의 처음과 마무리만 맡았을 뿐이다. 애플의 전 세계 단일전략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제품은 해상도가 향상된 애플의 새 노트북인 ‘맥북 프로 레티나 디스플레이’였다. 기존 노트북보다 4배나 더 선명하다.
새로운 아이폰도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모바일 운영체제(OS)인 iOS6가 관심을 끌었다. iOS6은 구글 지도 대신 애플이 자체 개발한 지도를 장착했다. 선명한 3D 지도와 함께 내비게이션 기능이 채택됐다. 대화형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도 영화 예약, 스포츠 게임 점수 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고, 한국어도 추가로 지원한다. 애플 기기 간 무료 영상통화 기능인 ‘페이스타임’도 무선인터넷망뿐만 아니라 이동통신망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이 이날 공개한 제품은 뛰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맥북에 새롭게 장착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이미 아이폰과 새로운 아이패드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iOS6 공개는 행사 전부터 기정사실화됐고, 새로운 지도가 채택될 것이라는 항간의 예측도 빗나가지 않았다.
잡스가 보여줬던 ‘한방’은 없었다. 쿡은 프레젠테이션의 처음과 끝을 맡아 간단히 인사를 했을 뿐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행사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애플의 완벽주의나 고집스러움도 한풀 꺾였다. 애플은 과거 세계 단일정책을 추구했지만 iOS6에서는 중국만을 위한 검색엔진을 추가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새 아이폰 출시 불발로 올여름 글로벌 모바일 시장은 삼성전자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은 iOS6의 정식 업그레이드가 시작되는 가을쯤에나 새 아이폰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페이스타임을 3G망에서도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외 이동통신업계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국내 이통사들은 카카오톡의 무료 인터넷 음성통화(mVoIP)에 이어 무료 영상통화까지 등장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SK텔레콤과 KT는 mVoIP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요금제와 제한된 용량 한도 내에서만 페이스타임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내비게이션 기능도 기본 적용됐지만 국내에서는 법률적인 문제로 사용이 어렵다. 하지만 애플이 세계 IT업계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국내 내비게이션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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