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대중가요의 풍경 재미 쏠쏠

“조영남, 나 2012년에 은퇴한다. 거기에 맞춰 책을 낼 건데, 네가 좀 맡아줘!”
가수 패티김의 54년 노래 인생,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김혜자(패티김 본명)의 74년 일생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가수 패티김은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는 한국 대중가요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압도적인 가창력, 화려한 무대 매너, 새로움에 도전하는 열정…. 이런 그녀가 지난 2월15일 54년여의 가수 생활을 마치겠노라고 선언했다. 은퇴의 이유는 분명하다. 최고의 가수 자리에서 팬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는 게 그녀의 바람이다. 오랜 세월 현역 가수로 활동해온 그녀이기에 책을 내자는 제안을 무수히 받아왔겠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가수 조영남과 패티김의 관계는 오뉘처럼 가까운 사이. 조영남은 2011년 여름 대선배 패티김에게서 뜻밖의 요청을 받는다. 2012년 은퇴한다는 말과 함께 자서전까지 써달라는 것. 조영남은 선배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조영남의 집필 작업은 2011년 8월 말부터 본격화됐다. 조영남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 “패티김 선배는 생각보다 말을 잘했어요. 조리 있게 또박또박 때로는 엄격하고 단호하게, 때로는 귀엽고 띨띨하게….” 조영남은 생각했다. 혼자 쓰는 것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체로 구성한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패티김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같은 어투를 최대한 생생하게 살렸다. 책을 읽는 도중 그녀의 인생사와 겹쳐지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지난 풍경들을 떠올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우’로 패티김을 세상에 알린 병상의 박춘석을 끝까지 챙긴 의리, 숱한 히트곡을 함께 만들고 부르며 결혼까지 했으나 이혼으로 결말 난 길옥윤과의 인간적인 신뢰는 가슴 뭉클하다.
미8군 무대에서 일본으로 진출한 것은 당시 하나의 사건이었다.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측의 초청을 받아 공연한 것은 그녀가 최초였다. 한국이 전혀 외부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시절에 솔로 가수로 미국에 진출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개인의 이름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정식 이름으로 사용된 것도 1966년 TBC-TV의 ‘패티김쇼’가 최초였다. 세종문화회관, 미국 카네기콘서트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한국 가수가 선 것도 모두 그녀가 최초였다.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한 것도 패티김이 최초였다. 그녀가 개척한 길을 따라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 한류도 그녀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조영남은 그녀에게 ‘띨띨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별명에 어울릴 만큼 노래 외에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한 그녀의 모습 때문이다. 노래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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