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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logue] 그녀가 떠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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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05 21:25:47 수정 : 2012-04-05 23: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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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이념이 무기가 될때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댁의 부인은 어떻습니까?’ 1966년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의 제목이다.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영화는 ‘부인’의 일탈을 꾸짖고 있다. 여주인공이 무릇 ‘부인’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김지미가 잘못한 것은 잠시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운도 없다. 단 한 번 눈짓을 준 것뿐인데 사기꾼에게 걸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런 설정은 경고이기도 하다. 집 밖의 남자들은 모두 사기꾼이며 일단 눈을 돌린 이상 실제적 불륜 여부는 무관하다는 경고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선 아내가 두 남자와 중혼을 하기도 하고 ‘결혼은 미친짓이다’에서 부인은 집 밖에 첩을 두기도 한다. 아무리 엄격한 관습도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습들이 사라지지 않고 더 강건해지는 일도 있다. 우마이라는 한 여성의 선택이 부른 비극을 보여주는 영화, ‘그녀가 떠날 때’처럼 말이다. 

‘그녀가 떠날 때’는 이혼을 결심한 우마이로부터 출발한다. 폭력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남편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우마이는 아들 젬과 함께 독일의 친정으로 돌아온다. 문제가 있으면 이혼하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무슬림 여성에게 이는 목숨을 건 도전이다. 이슬람 문화권 안에는 여전히 명예 살인이 존재한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을 가족 구성원 스스로 처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명예 살인이다. 게다가 이 명예라는 것이 지독하게 남성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이다. 이혼을 요구하는 것, 아들을 낳지 못한 것 심지어 길거리에서 가족 외의 남자와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명예 살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내의 얼굴에 염산을 붓고, 코를 베고, 산 채로 매장한다 해도 남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오히려 집안의 명예를 되살렸다는 칭송을 받는다. 이때 비난받는 것은 해선 안 될 짓을 한 여자들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듯 이 잘못된 관습은 유효한 실정법으로 군림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러한 관습이 외국에 살고 있는 이민 사회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우마이의 가족 역시 독일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독일인’처럼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철저히 ‘터키인’으로 살아간다. 남편을 버리고 떠나온 누이는, 따라서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욕하고 처단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에게는 윤리적 보편성보다 문화적 관습이 더 우선인 셈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 하지만 가족에게 그녀는 수치다. 여동생은 약혼자에게 파혼 선고까지 받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녀를 이해하려 했던 남동생까지도 하나 둘씩 등을 돌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그들은 명예 살인을 준비한다. 우마이는 지긋지긋한 가족제도로부터 벗어나 진짜 ‘가족’을 갖길 원했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그런 곳으로서의 가족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가족은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가족을 찾아가지만 그때마다 가족은 그녀에게 더 가혹한 징벌을 돌려줄 뿐이다.

‘그녀가 떠날 때’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비교해보면 더 재밌는 작품이 될 법하다. 이란을 배경으로 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는 같은 이슬람 문화지만 이혼이라는 과정이 순탄하게 그려진다. 반면 ‘그녀가 떠날 때’는 독일임에도 이란보다 더 지독한 관습에 지배받는다. 종교가 생활의 방식이자 이데올로기, 정치적 이념인 이슬람 문화는 문화적으로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그 이념이 ‘여성들’을 해치는 주관적 판단의 무기가 될 때,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 가슴속 깊은 곳을 먹먹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세상의 모든 관습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닐까? 과연 처음부터 사람을 해하라고 명령하는 이념이 있었을까? 잔잔한 영상과 잔인한 파국이 인상적인 영화, ‘그녀가 떠날 때’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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