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디가드’의 주인공으로 세계 팬들에게 각인된 스타. 도도하고 오만했지만, 감동적인 노래를 들려줬던 가수. 마약과 술에 빠져 뒤틀린 내리막을 걸을 때마저 버릴 수 없던 그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AP통신은 홍보담당자 크리스틴 포스터가 휴스턴이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에 있는 호텔 비벌리힐튼에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예 전문 매체 TMZ는 휴스턴이 호텔방 욕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휴스턴을 발견한 그의 일행 중 한 명이 구조대에 신고했다. 응급구조팀이 휴스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오후 3시55분. 휴스턴은 공식적으로 사망진단을 받았다.
그래미상 시상식을 하루 앞둔 그의 죽음을 두고 일각에선 그가 최근 겪은 심리적 고통이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TMZ는 호텔방에서 불법 마약류가 없었고 의사 처방으로 살 수 있는 약병들이 여럿 발견된 점을 들어 약을 복용한 휴스턴이 목욕 도중 욕조에서 약 기운에 취해 익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찰은 타살 등 범죄 흔적이 없었고, 정확한 사인을 찾기 위해 부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친구의 사망 소식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눈물이 난다.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며 슬퍼했다.

◆화려했던 전성기
휴스턴의 인생은 1963년 뉴저지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음악과 함께 시작됐다. 어머니는 유명 가스펠 가수인 시시 휴스턴이었고, 대모(Godmother)는 솔(Soul)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이었다. 조그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19세의 휴스턴이 유명 음반제작자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눈에 든 것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985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휘트니 휴스턴’은 2500만장이 팔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 앨범은 역대 여성 가수의 솔로 데뷔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을 남겼다.
1992년 배우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의 성공으로 그는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속의 그의 모습은 완벽한 ‘디바’였다. 세계 수많은 영화 팬들은 은막에 등장한 그의 관능적인 모습과 폭발적인 가창력에 숨을 죽였다. 영화 주제곡인 ‘I Will Always Love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총 1억7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했고, 그래미상 6회, 빌보드 뮤직 어워드 16회 수상 등 총 415번의 상을 받았다. 여성 가수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것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뒤틀린 내리막길
휴스턴의 마지막은 화려했던 전성기와 극적으로 대비됐다. 그가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9일. 할리우드 인근 한 나이트클럽 앞에서였다. 머리카락과 옷은 흐트러진 상태였고 취재진을 향해 거친 말을 퍼부었다. 2007년 마약에 빠진 휴스턴의 모습이 팬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지 언론들은 ‘휴스턴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무절제한 생활 탓에 그의 목소리는 거친 쇳소리가 날 정도로 상했다.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고음은 오간 데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돈이 없던 그가 동료 가수에게 100달러를 빌려달라고 했던 것은 화젯거리가 됐다.
그의 추락은 1992년 결혼한 가수 겸 작곡가 바비 브라운과 비틀어지면서 시작됐다. 2000년부터 휴스턴을 폭행한다고 알려졌던 브라운은 2003년 가정폭력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2006년 휴스턴은 브라운과 이혼했지만 이미 마리화나 등 약물에 빠져버린 뒤였다. 그의 팬들은 “브라운을 만난 것이 그의 인생 최대의 불운이었다”고 평한다.
2009년부터 재활의지를 보인 휴스턴은 이듬해 한국을 비롯한 월드투어를 재개하며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세계 최고 권위의 팝 음악상인 제54회 그래미상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전날 생을 마감해 이제는 ‘팝의 전설’로 남게 됐다.
정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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