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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예술기행] (上) 전통미술

입력 : 2012-01-26 01:07:37 수정 : 2012-01-26 01: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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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를 사랑할 때 예술이 탄생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으로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동서양의 교차로 역할로 두 대륙의 문화가 잘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는 물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흘러 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땅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의 원류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다. 3회에 걸친 터키예술기행을 통해 터키 전통미술, 건축, 여성미술을 소개한다.

세계경제는 지금 차기 선진국이 아닌 차기 신흥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른바 시베츠(CIVETS) 국가들이다.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집트,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국을 일컫는다. 시베츠는 청년층 인구와 자원이 많다는 점에서 차기 신흥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터키 미술시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부터 터키 이스탄불 아트페어(CI·Contemporary Istanbul)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위치상 서유럽과 동유럽, 중동과 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어 전 세계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수도 매년 느는 추세다. 아트페어 측이 마련한 파티장엔 고가 명품 가방을 든 여성이 즐비하다. 1990년 이후 경제규모가 급신장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스탄블 번화가 골목 곳곳에선 새로 문을 연 갤러리들도 눈에 띈다. 판이 커지고 있는 터키 미술시장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축적된 부가 미술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만나는 미술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에 넘쳐 있다. 몇년 내 터키의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진입할 것이란 얘기도 빼놓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두꺼운 젊은 층은 향후 구매력을 지닌 중산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수요처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수출로 성장을 일군 브릭스와 달리 시베츠는 내수시장이란 막강한 무기로 대외 의존도가 낮아 세계경제 둔화에도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술 등 문화도 결국엔 경제적 토대가 뒷받침 돼야 한다. 터키 미술 컬렉션의 넘버 원을 자랑하는 엘기즈(Elgiz Contemporary Art Museum)와 보루산 그룹의 미술관엔 신디 셔먼, 게르하르트 리히터, 루이스 부르주아, 토머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짐 다인, 도널드 저드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아트페어를 주관하는 측에서 굳이 두 미술관을 관람토록 한 안배가 이해됐다.

서구와 중남미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 페라뮤지엄. 상설전으로 터키의 전통미술과 공예품도 소개하고 있다.
주마간산 격이지만 터기미술의 현주소를 파악해 보려고 화랑가를 둘러 보았다. 터키 전통미술의 다양한 변주 움직임을 미약하나마 감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핫(Hat)과 세밀화(미니아튀르·miniature)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 한국 작가들이 전통 한국화의 현대적 모색을 고민하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동양의 서예에 해당하는 터키의 전통예술인 ‘핫(Hat)’작품. 글씨 자체로 문양과 형상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변주된다.
‘ 핫’은 터키의 대표적인 이슬람 미술로 코란에 나와 있는 알라의 가르침을 내용에 맞게 아름답게 표현한 ‘터키식 서예’라 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과거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코란을 양피지에 필사하는 예술 형태가 자리를 잡았다. 글씨를 쓸 땐 갈대로 만든 붓을 사용한다. 예전엔 최소한 5년 동안 한 예술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4∼5명의 예술인에게 평가를 받고 난 후에야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핫은 터키만의 전통미술이라 할 수 없다. 다소 양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이뤄지는 미술이다. 유교문화권인 한·중·일의 서예문화와 같은 것이다. 

핫 전문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한 작가의 도록 표지엔 ‘무함마드를 사랑할 때 예술이 됐다’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핫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터키의 핫은 동양의 서예보다 다양하고 힘차고 웅장한 멋이 일품이다. 요즘엔 조형성이 돋보이는 설치작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터키인의 삶의 모습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세밀화. 유럽의 화려한 장식성과 동양의 채색미를 동시에 소화해 내고 있다.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에도 나오는 세밀화는 10세기 초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에서 많이 제작돼 종교서적의 삽화와 장식에 많이 이용됐다. 현존하는 세밀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자의 서’ 삽화다. 초기 세밀화는 고대 그리스로 전해져서 기원전 2세기경에는 천문학서나 각종 학술서, 문예서에도 삽화로 그려졌다. 15∼16세기에는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최고조에 달하였으나 인쇄기술과 목판화·동판화가 성행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당대 터키인의 삶의 모습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세밀화는 유럽의 화려한 장식성과 동양의 채색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의 세밀화가 유럽은 물론 페르시아와 중국 회화기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셈이다. 여러 문화가 뒤섞이는 터키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세밀화는 비잔틴 미술에서도 삽화로 많이 쓰였기에 100% 터키 전통미술이라 할 수 없다. 문화란 원래 그런것이다.

파무크는 소설 ‘내 이름은 빨강’ 에서 세밀화 장인들을 등장시켜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동서 문명 마주침’ 역사를 추리소설 형식으로 버무려 내고 있다. 일정한 형식과 채색 기법을 엄격하게 따르는 세밀화 궁중예술가들이 소설의 무대를 누빈다.

술탄만이 예술의 전권을 가진 이슬람 사회에서 오스만제국 궁중 세밀화가들은 당시 밀려드는 서양의 실제 풍경을 담은 풍경화에 적잖이 당황했음이 분명하다. 원근법을 접하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문명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게 낮가림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파무크는 어쩌면 세밀화가들을 통해 문명 간의 만남을 우열과 굴종이란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충돌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주의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이들이다. 타 문화를 죄악시하기까지 한다. 터기 미술은 이를 자각케 해준다.

아교와 끈적임 성질이 있는 식물성 재료를 함께 끓인 액체 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화폭으로 건져내는 ‘에브루(마블링)’ 작품.
일반에 비교적 잘 알려진 터기 전통미술은 마블링이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마블링이란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제작했다. 마블링은 15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터키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이스탄불을 여행한 한 독일인이 미술품 판매점에서 마블링 작품을 보고 반해 유럽에 소개했다. 대리석의 무늬와 흡사하다고 하여 마블링이라 부르게 됐다. 주로 튤립, 카네이션, 제비꽃 등의 꽃무늬가 마블링 기법으로 그려졌다. 물의 움직임,예술가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각양의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마블링의 정확한 명칭는 에브루(Ebru)다. 15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전수받았다는 내용 역시 어패가 있다. 터키 민족 자체가 8세기 경에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15세기 중반에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가 터키 민족 집단에 속하는 예술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전파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발전·계승됐기에 터키 미술로 분류된다.

에브루를 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여전하다. 작가가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블링이라는 우연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에브루라고 알려진 작품은 1539년 톱카프 궁전에서 발견된 아리프(Arifi)의 ‘구이 이 체브간(Guy-i Cevgan)’이라는 책의 삽화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에브루가 물과 기름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감이나 물 어디에도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교와 끈적임의 성질이 있는 식물성 재료를 함께 끓여, 그 위에 물감을 떨어뜨린다.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기 위해서 소 쓸개즙을 물감에 섞어서 쓴다.

에브루로 실제 작업을 해 본 이스탄불대학 한국 유학생이 가르쳐준 내용이다. 그는 러시아와 터키 대학을 오가며 비잔틴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제3세계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페라뮤지엄에 전시된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돋보이는 터키 전통 도자기. 문양엔 ‘파라다이스 정원’ 같은 인간의 이상향이 담겨 있다.
근래에 샤갈 전 등이 열렸던 페라(Pera)뮤지엄은 이스탄불 뮤지엄 투어에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갤러리 투어 도중에 들른 이스탄불 페라뮤지엄에선 터키 전통 도자기와 중국 도자기를 볼 수 있었다.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문화교류와 터키 도자기의 진면목을 살펴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생생한 색채와 함께 자연을 소재로 한 기하학적인 무늬장식이 이채롭다. 초기 오스만제국 도예가들은 나뭇잎 무늬나 과일·식물의 모습을 반으로 가르면 나타나는 무늬들을 기반으로 새롭고 신비로운 문양을 창조하였다. 무늬들은 빨강, 에메랄드 그린, 터키석, 코발트블루 등의 색채와 어우러져 생동감을 주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터키 도자기 중에서도 큐타야 지방의 도자기가 유명하다. 무늬장식에는 꽃, 나뭇잎, 갈고리 형태의 나뭇잎 모양 등이 많다. 인간의 삶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도자기 문양에 대한 의미에 대해 궁금해 하자 미술관 큐레이터가 미술관에 비치된 도자기 책자 하나를 보라고 권한다. 책 제목이 ‘파라다이스 정원’이다. 문양엔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에덴 동산의 정원의 모습도 그런 것일 게다.

이스탄불=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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