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으로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동서양의 교차로 역할로 두 대륙의 문화가 잘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는 물처럼 흘러가기도 하고 흘러 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땅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의 원류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다. 3회에 걸친 터키예술기행을 통해 터키 전통미술, 건축, 여성미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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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와 중남미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 페라뮤지엄. 상설전으로 터키의 전통미술과 공예품도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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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서예에 해당하는 터키의 전통예술인 ‘핫(Hat)’작품. 글씨 자체로 문양과 형상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변주된다. |
이슬람에서는 과거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코란을 양피지에 필사하는 예술 형태가 자리를 잡았다. 글씨를 쓸 땐 갈대로 만든 붓을 사용한다. 예전엔 최소한 5년 동안 한 예술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4∼5명의 예술인에게 평가를 받고 난 후에야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핫은 터키만의 전통미술이라 할 수 없다. 다소 양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이뤄지는 미술이다. 유교문화권인 한·중·일의 서예문화와 같은 것이다.
핫 전문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한 작가의 도록 표지엔 ‘무함마드를 사랑할 때 예술이 됐다’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핫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터키의 핫은 동양의 서예보다 다양하고 힘차고 웅장한 멋이 일품이다. 요즘엔 조형성이 돋보이는 설치작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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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의 삶의 모습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세밀화. 유럽의 화려한 장식성과 동양의 채색미를 동시에 소화해 내고 있다. |
당대 터키인의 삶의 모습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세밀화는 유럽의 화려한 장식성과 동양의 채색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의 세밀화가 유럽은 물론 페르시아와 중국 회화기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셈이다. 여러 문화가 뒤섞이는 터키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세밀화는 비잔틴 미술에서도 삽화로 많이 쓰였기에 100% 터키 전통미술이라 할 수 없다. 문화란 원래 그런것이다.
파무크는 소설 ‘내 이름은 빨강’ 에서 세밀화 장인들을 등장시켜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동서 문명 마주침’ 역사를 추리소설 형식으로 버무려 내고 있다. 일정한 형식과 채색 기법을 엄격하게 따르는 세밀화 궁중예술가들이 소설의 무대를 누빈다.
술탄만이 예술의 전권을 가진 이슬람 사회에서 오스만제국 궁중 세밀화가들은 당시 밀려드는 서양의 실제 풍경을 담은 풍경화에 적잖이 당황했음이 분명하다. 원근법을 접하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문명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게 낮가림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파무크는 어쩌면 세밀화가들을 통해 문명 간의 만남을 우열과 굴종이란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충돌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주의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이들이다. 타 문화를 죄악시하기까지 한다. 터기 미술은 이를 자각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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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와 끈적임 성질이 있는 식물성 재료를 함께 끓인 액체 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화폭으로 건져내는 ‘에브루(마블링)’ 작품. |
사실 마블링의 정확한 명칭는 에브루(Ebru)다. 15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전수받았다는 내용 역시 어패가 있다. 터키 민족 자체가 8세기 경에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15세기 중반에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가 터키 민족 집단에 속하는 예술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전파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발전·계승됐기에 터키 미술로 분류된다.
에브루를 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여전하다. 작가가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블링이라는 우연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에브루라고 알려진 작품은 1539년 톱카프 궁전에서 발견된 아리프(Arifi)의 ‘구이 이 체브간(Guy-i Cevgan)’이라는 책의 삽화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에브루가 물과 기름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감이나 물 어디에도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교와 끈적임의 성질이 있는 식물성 재료를 함께 끓여, 그 위에 물감을 떨어뜨린다.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기 위해서 소 쓸개즙을 물감에 섞어서 쓴다.
에브루로 실제 작업을 해 본 이스탄불대학 한국 유학생이 가르쳐준 내용이다. 그는 러시아와 터키 대학을 오가며 비잔틴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제3세계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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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뮤지엄에 전시된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돋보이는 터키 전통 도자기. 문양엔 ‘파라다이스 정원’ 같은 인간의 이상향이 담겨 있다. |
터키 도자기 중에서도 큐타야 지방의 도자기가 유명하다. 무늬장식에는 꽃, 나뭇잎, 갈고리 형태의 나뭇잎 모양 등이 많다. 인간의 삶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도자기 문양에 대한 의미에 대해 궁금해 하자 미술관 큐레이터가 미술관에 비치된 도자기 책자 하나를 보라고 권한다. 책 제목이 ‘파라다이스 정원’이다. 문양엔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에덴 동산의 정원의 모습도 그런 것일 게다.
이스탄불=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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