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석궁 테러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파장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제 2의 도가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당시 사건이 뒤늦게 재조명되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서울고법 민사2부 재판장이었던 박홍우 부장판사를 상대로 이른바 ‘석궁 테러’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다.
김 전 교수는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주장한 뒤 1996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1,2심 모두 패소하자 박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발사했다. 이에 김 전 교수는 2008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라는 원심 판결이 확정돼 복역 후 지난해 1월23일 만기 출소했다.
‘부러진 화살’은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재현됐다. 개봉 이후 실화와 영화 내용의 일치 여부가 관심사로 부상했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은 “영화는 실화 90%에 허구 10%가 가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명호 전 교수를 변론했던 박훈 변호사는 “영화와 실제 변론과정이 100%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의 쟁점은 증거물로 지목된 부러진 화살의 제출 여부, 박홍우 판사의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의 진위다. 김 전 교수 측은 재판 과정에서 박 판사가 배에 맞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았고, 박 판사의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었지만 조끼와 내의 사이에 혈흔이 묻었다는 점을 들어 증거조작을 의심하고 있다.

법조계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각급 법원의 공보판사들에게 A4용지 2장 분량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영화가 불러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조계는 사법부가 진실을 외면한 채 권위만 내세우는 기관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측은 “당시 사건은 충분히 유죄가 입증됐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기존 판결문을 통해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전 교수가 석궁을 들고 박 판사를 찾은 사실이 분명하고 남은 화살로 범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이셔츠에 혈흔이 묻지 않은 것은 박 판사의 노모가 빨았기 때문이며, 사건 당시 박 판사가 입고 있던 조끼와 내의 그리고 와이셔츠에서 혈흔이 발견, 동일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인터넷에서 ‘부러진 화살’에 대한 반응은 심상치 않다. 사법부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며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트위터를 통해 “개봉 첫주 관객 점유율이 낮으면 퐁당퐁당 상영으로 조기종영이 우려된다”며 관람을 호소하고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한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담은 영화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며 “이미 끝난 사건으로 여론몰이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러진 화살’로 야기된 논란은 사건의 진위와는 별개로 제 식구 감싸기,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등 그동안 사법부에 쌓여온 뿌리깊은 불신에서 비롯한 결과다. ‘우리는 떳떳하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편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법정극이라는 장르적 약점에도 불구,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박스오피스 2위(2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관통합전산망 집계결과)에 올라 ‘문제작’임을 입증했다. ‘부러진 화살’이 제 2의 도가니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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