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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비운의 군인’ 장태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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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19 00:23:06 수정 : 2012-01-19 0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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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들아. 너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고 장태완 장군이 수도경비사령관이던 1979년 12·12사태 당시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여 있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신군부가 쿠데타에 협력할 것을 종용했으나 오히려 진압에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참군인으로 평가받는 장 장군은 비운의 군인이다. 대구상고 졸업 후 6·25 때 입대해 비육사 출신으로 수도경비사령관에 오를 정도로 잘나갔으나, 12·12 때 신군부에 맞선 것이 ‘괘씸죄’가 되면서 질곡의 개인사를 겪는다. 장 장군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신군부에 분연히 맞서다 체포돼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두 달간 모진 고초를 당했다. 이후 이등병으로 강등돼 강제예편된 뒤 가택연금된다.

그 후 장 장군의 슬픈 가족사가 시작됐다. 언론에도 소개됐지만 부친이 아들이 당한 분함을 삭이지 못하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1980년 4월 세상을 등진 것이다. 2년 후에는 보안사 요원이 집에 상주하는 데도 꿋꿋하게 공부해 서울대 자연대에 합격한 외아들 성호(당시 20세)씨가 경북 왜관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추운 겨울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군부들이 ‘역적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당시 장 장군은 꽁꽁 언 시신을 부둥켜안고 서울로 오면서 아들의 차디찬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비벼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면서 녹였다고 한다.

장 장군은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묘비에 녹였다. “고 장성호의 종착지.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1학년. 저 높은 곳 어디멘지 찾고 찾았으나 네가 찾은 곳이 바로 여기구나.… 이곳을 찾아서 한맺혀 못다 핀 20세의 젊은 나이, 푸른 강물 바라보며 못다 핀 꽃이 되어….”

그제 장 장군의 부인 이병호(77)씨가 우울증을 앓아오다 투신 자살했다. 2년 전 지병으로 별세한 남편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장 장군의 집안 3대가 비운을 당한 것이다. 장 장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반란죄 등으로 옥살이를 한 것과 달리 국회의원 등을 하면서 반전을 이뤘지만 가족의 비극은 반전되지 않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원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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