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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초라한 '최후의 나날'… 트리폴리 떠난후 빈집 돌며 음식 구해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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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24 06:54:31 수정 : 2011-10-24 06: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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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 10여명과 수르트행
나토軍 두려워해 … 전투 안나서
외부와고립 … 코란 읽으면 소일
무아마르 카다피가 트리폴리에서 쫓겨난 뒤 빈집에서 음식을 구해 먹는 등 비참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카다피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했던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의 증언을 통해 카다피 최후의 나날을 재구성했다. 카다피의 조카로 알려진 다오는 카다피가 수르트에서 시민군에게 포위되는 순간에도 함께 있었다.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함락된 다음날인 8월 21일 측근과 수행원 약 10명만 데리고 카다피 지지자들의 근거지인 타르후나와 바니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수르트에 도착했다.

다오는 “(카다피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다오는 카다피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신 카다피는 외부와 거의 고립된 채 코란을 읽거나 위성전화 통화로 시간을 보냈다. 일행은 빈집에서 찾아온 음식을 먹었으며 요리사가 다친 뒤로는 모두 음식을 직접 해 먹었다.

다오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은 카다피에게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고 말했다.

영국 타임스 일요판 ‘선데이 타임스’는 카다피가 머물던 집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수르트 콜롬비아가 36번지의 단층 주택을 공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거실에는 녹색 군복과 매트리스 10여장이 쌓여 있었다. 부엌에는 인스턴트 식품이 많았고, 냉장고에는 붉은 고추와 레몬 몇 개뿐이었다. 그러나 도피 생활 와중에도 ‘패션’을 포기하지 못했던 듯 붉은색 꽃무늬 실크 조끼와 고급 넥타이, 이탈리아제 셔츠 등이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2주 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수르트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카다피 일행은 20일 오전 8시 콜롬비아가 주택을 떠나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다오가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결국 30분 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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