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한 턱선, 길고 가느다란 손을 가진 남자는 여체(女體) 예찬론을 펼쳤다. 여성의 몸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디자이너 이재환(33)의 표정은 황홀해보였다. 그가 만든 여성복은 디자인스쿨 교수들조차 여제자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삼형제 중의 막내, 중학교 때 아이스하키 주니어 국가대표까지 했던 남자다. 국내보다 프랑스에 더 잘 알려진 그는 올해 서울시의 글로벌패션브랜드 육성프로젝트 ‘2011 Seoul’s 10 soul’ 10인의 디자이너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22일까지 열리는 ‘서울패션위크 S/S(봄여름) 2012’에서 한국 패션을 이끌어갈 차세대 디자이너인 ‘제너레이션 넥스트’에도 선정됐다. 지난 18일 서울패션위크가 열리고 있는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쇼를 하루 앞둔 이재환 디자이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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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글로벌패션브랜드 육성프로젝트 ‘2011 Seoul’s 10 soul’ 10인의 디자이너 중 한명이자 ‘서울패션위크 S/S2012’의 ‘제너레이션 넥스트’에도 선정된 이재환 디자이너. |
발레와 설치미술이 어우러진 ‘플라잉 레슨’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 김세연,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김지영, 유니버설발레단의 객원주역무용수 임혜경 등 세 명의 발레리나와 런던에서 설치술가로 활동 중인 조민상 작가, 이재환의 공동작업으로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그려 호평을 받았다.
“도구를 이용해서라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팔에 줄을 매단 사람이 새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나는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먼저 그렸어요. 패션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줄을 연상케 하는 술 테이프, 체인 등을 적용하고, 포인트 컬러로 실버를 선택했고요. 기존에 추구하던 극도의 여성스러움에 섹시함을 더해 섹시하면서도 우아한 여성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184㎝의 헌칠한 키, 자그마한 얼굴로 런웨이에서 걸어나온 듯한 그는 원래 운동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국내 아이스하키 청소년 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소질이 있었던 그를 부모님은 뉴욕으로 보냈다. 하지만 고1 때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형을 따라 우연히 보게 된 베르사체 패션쇼를 보고는 진로를 바꿨다. 정작 형은 패션과 상관없는 부모님의 가업을 잇고 있고, 그는 고교 졸업 후 귀국해 에스모드 서울을 거쳐 에스모드 파리와 스튜디오 베르소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파코 라반, 끌로에 등에서 인턴을 하고, 마틴 싯봉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로즈 마랑 액세서리 디자이너, 에르메스 액세서리 라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등으로 활동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7년 프랑스 디나르 국제 신진디자이너 페스티벌에서 전 세계 602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심사위원 13명 만장일치로 여성복 부문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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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 S/S 2012 무대에서 선보인 이재환의 작품들. 서울패션위크 제공 |
당시 심사위원들은 “소재와 색상 선택도 탁월했지만 여성의 인체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일 수 있도록 완벽하게 패턴을 구성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듬해 프랑스에서 본인의 이름으로 ‘재환 리 파리(jaehwan*lee paris)’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그해 ‘올해의 파리 디자이너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에 참가했던 세계 최대 트레이드쇼인 트라노이에서 그의 부스를 방문한 파리패션협회 뮤리엘 피아제 사장은 “이재환은 외국인이지만 프랑스인의 감수성을 갖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발주까지 했다.
지난해 10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쇼룸을 연 그는 브랜드 콘셉트보다 젊은 세컨드 브랜드 ‘고야(Goya)’를 곧 론칭할 계획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만이 갖고 있는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현실화시켜주는 것, 자신도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패션의 기본을 지키면서 저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세계 패션사에 진정한 예술인으로 남는 것이 꿈입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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