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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서] ‘사마천의 사기 전 6권’

입력 : 2011-10-15 00:24:11 수정 : 2011-10-15 0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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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 울분을 원동력으로 삼아 써내려간 발분저서 얼마 전 김원중 교수가 사마천의 ‘사기’를 완역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고 좋았다. 무엇보다 배우고 가르치는 본분에 충실한 중문학자가 16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꼼꼼하고 세심하게 우리말로 풀이한 역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사기가 우리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문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역사는 필수불가결하다. 어찌 문학전공자에게만 그러하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역사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사경이자 망원경이며 또한 현미경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천착하거나 일상적인 삶을 교정하는 데 역사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 가슴이 막히도록 억울하고 서러울 때, 심지어 흥이 고조될 때도 청사(靑史), 그중에서도 사기에 빠져든다.

원래 사기(史記)라는 말은 사서의 통칭이었다. 사마천의 사서는 그저 태사공서(太史公書) 또는 태사공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사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중국 삼국시대부터인데, 이후 태사공서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처음 사기를 구상한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간 한 개인이 전체 130편, 자그마치 52만6500여 자로 이루어진 방대한 저작물을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고도의 집중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기에는 몇 가지 고유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전체의 효시, 발분저서(發憤著書), 사가(史家)의 절창이자 무운(無韻)의 이소(離騷).

연도에 따라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와 다르다. 기전체는 역대 제왕의 전기인 본기(本紀)와 인물의 전기인 열전(列傳)을 중심으로 도표처럼 간단 명료하게 역사적 사건과 현상을 나열하는 표(表), 권문세가의 가족사인 세가(世家), 경제나 문화 등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기록한 서(書) 등 다섯 가지 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사기가 그 시작이며, 이후 중국의 정사인 25사(史)는 거의 이를 따랐다. 발분저서라 함은 가슴속 울분을 저작의 원동력을 삼았다는 뜻이다.

아시다시피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률에 따르면 사형을 언도받더라도 나라에 50만 전을 내고 속죄하거나 궁형(宮刑)을 선택할 수 있었다. 태생이 가난했던 그는 잠실에서 결국 거세당하는 궁형을 택했다.

“하늘과 인간의 도리를 연구하고 고금의 변천을 통찰하여 일가의 설을 세우고자 한다(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던 그의 사기는 이런 발분저서의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책에 나오는 숱한 인물들 속에서 그의 입김과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루쉰(魯迅)이 사기를 굴원의 이소와 비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심규호 제주산업정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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