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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의 연극家 사람들] 2011년 범인(凡人)의 반란, 국립극단의 ‘보이체크’-'개연성' 보강으로 한층 성숙된 ‘피맛골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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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보이체크],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만든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가 지난 주 개막했다. 연극[보이체크]는 폴란드 연출가 브라데츠키와 한국 배우들의 합작 무대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피맛골 연가]는 2010년 초연에 이어 과연 어떻게 업그레이드 됐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 [리뷰]‘보이체크’

이발사 출신인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의 적(enemy)은 세상이요. 보이체크가 사는 세상은 소장(권력층)과 의사(지식층)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유일한 안식처는 '마리'다. 단 하나의 삶의 이유였던 '마리'가 고적대장에게 유혹당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희망을 버리고 만다.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 이야기다.

국립극단이 올린 [보이체크]는 현대가 만들어낸 사회의 가장 하등한 인간을 무대로 불러냈다. 두개의 철제기둥 주변을 쉴새없이 왔다갔다하는 보이체크는 블루컬러의 하층계급인 노동자 청년이 아니었다. 빚까지 얻어 대학을 졸업해도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되는 현대의 청년의 모습과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타의 [보이체크]공연에선 주인공에게 연민을 가졌다면, 이번엔 연민보다는 공감이 앞섰다. 마리의 아이가 누워있는 마트 카트 역시 오늘날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취업의 여정에 성공적으로 올라타기 위해서는 한국식 재벌구조의 철통같은 방어벽을 뚫거나 무임승차해야 한다. 연출가 브라데츠키는 손진책 감독과의 대담 중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 '재벌'을 찾아냈다"라고 밝혔다. 연출가의 의도대로 배우 서상원이 분한 '보이체크'는 지금까지 봤던 주인공 색채와는 상당히 달랐다. 굽실굽실 거리는 모습은 그대로였으나, 자신의 희망인 아이와 부인 마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는 적극성이 넘쳤다. 하지만 자신이 원래 부자일 수 없음을, 자신의 몫은 애초부터 남겨져있지 않은 환경과 출신에 의해 종속된 존재임을 알게되자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항거하게 된다.

이 연극은 이발사 보이체크의 슬픈 이야기에 대한 두 얼굴의 내레이터인 흥행사(장석익· 박성연)들이 등장한다. 나래이터 뿐 아니라 극중 인물로 분하기도 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한다. 또한 관객에게 "가지지 못한 자의 도덕은 '살인'으로 증명할 수 밖에 없다. 혹은 이러한 '살인'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운다.  이 두 명의 새로운 흥행사는 자칫 무겁게만 보일 수 있는 연극에 생기와 유머, 페이소스를 끌어냈다.

무대는 딱 한번 열린다. '고립'된 이미지가 강했던 무대는 보이체크가 살인을 한 이후 숲가로 가는 장면에서 잠시 속살을 내비친다. 다만, 대극장 무대를 영리하게 채우는 무대장치가 다소 부족한 점은 아쉽다. 중간 중간 들을 수 있는 군악대의 음악 역시 배우들보다 비중이 강해 코러스들이 묻히는 인상이었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건 극명해보인다. [보이체크]의 시적인 대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오브제 혹은 장치들이 면밀하게 구축되지 않은 결과, 작품을 처음 접한 이는 대사를 통해서만 극을 이해해 난해하다고 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같은 제목의 연극을 여러번 접한 이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현시대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핵심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뛰어난 배우 이호재, 정상철, 서상원, 서주희, 박완규, 박성연, 이윤재등의 조합으로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것도 사실. 실제 공연을 보고나니 이 사회 지식층을 대변하는 검은색 의상의 의사(이호재)의 연기가 가장 안정적이었다. 9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 [리뷰]‘피맛골 연가’

"쥐 떼 이유 알았어"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자,  세종문화회관 로비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관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2010년 [피맛골 연가] 초연시, 2막의 쥐떼들의 등장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쥐떼"들의 등장으로 작품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 [피맛골 연가](연출 유희성)이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왔다. 초연을 봤던 이들은 달라진 포인트를 찾아내며 소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제작진도 '쥐떼'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번엔 쥐떼가 1막부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피맛골에 있는 살구나무 정령 '행매'가 등장할때마다 작은 쥐떼 무리가 나온다. '행매'는 김생과 홍랑의 아름다운 사랑을 연결 시켜주는 중매쟁이이다. 이쯤되면, 2막의 쥐떼가 왜 등장해야 하는지 개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 결과 1막에서 들을 수 있는 넘버 '얼치기 노래'(서출 출신 김생의 신세를 코믹하게 풀어냄)가 어떤 의미인지도 보다 명확해졌다.

2011년 [피맛골 연가]에선 홍랑과 김생의 가슴시린 사랑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보다 디테일하게 두 연인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게 장면배분을 했을 뿐 아니라 홍랑의 자결장면에선 절절함이 배가 됐다. 영상을 활용한 바닷 속 장면은 다시 봐도 아찔하다. 다른 장소, 같은 무대에 대한 원근감을 무대로 가져와 두 남녀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홍랑의 죽음은 빨간 조명으로 분위기를 유도하고 김생의 죽음은 바다에 던져진 후 보여지는 물결의 출렁거림, 물방울이 선명하게 투사된 스크린으로 장면을 연출했다. 

'김생'과 '홍랑'은 300년 뒤 경성에서 짧게나마 재회하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둘의 이야기, 단 하루지만 온 세상이 마치 자신의 사랑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애절한 둘의 사랑은 넘버 '아침은 오지 않으리'에서 장엄하게 풀어낸다. 이동식 계단에 올라선 김생과 홍랑은 만날 듯 만나지 않게 스쳐지나가다 결국엔 만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잔향 역시 강해 극이 끝난 뒤에도 멜로디는 계속 남아있었는데, 이쯤 되면 창작 뮤지컬로선 성공한 셈이다. 관객들의 바람대로 공연 시작일에 맞춰 전격 OST 앨범을 출시했다. 클래식에 바탕을 둔 웅장한 선율에 대금, 해금 등의 국악기 소리가 일품이다. 좋은 작품, 착한 가격 관 주도 뮤지컬인만큼 티켓 값 뿐 아니라 OST 앨범 가격도 5천원으로 저렴하다.

뮤지컬넘버 ‘숨어라 사랑아’와 꼬리알록과 몸통얼룩 쥐떼들의 군무에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힙합, 재즈댄스,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매치 흥이 절로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피맛골의 운명적인 사랑은 턴테이블을 이용한 빠른 무대 전환을 이용해 철거를 앞둔 현재의 피맛골 모습과 1600년대 한양, 1900년대 경성으로 시대를 넘나드는 공간을 펼쳤다.

맑은 음색을 지닌 배우 박은태·조정은은 이번에도 역시 관객들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새로운 캐스팅도 기대할만하다. 무대위 부드러운 카리스마 박성환(김생)과 힘있는 연기와 단단한 내공의 떠오르는 배우 선영(홍랑)이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9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전문 칼럼니스트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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